▲가을빛을 받은 신라 고찰 해운사의 아름다운 풍경. 특히 법당 뒤로 보이는 절벽이 인상적이다. 대웅전 좌후쪽으로 보이는 암벽의 움푹 패인 곳이 길재가 머물렀다는 도선굴(사진의 흰 동그라미)이다. 그런데 사진에서는 대웅전과 도선굴이 아주 가깝게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절 왼쪽으로 돌아 대혜문을 지나 대혜폭포 앞에서 오른쪽으로 절벽을 타고 들어가는 데에는 15분가량 걸린다.
정만진
약사암은 산 정상 바로 뒤편 절벽에 있다. 주 등산로를 타고 정상을 답사한 후 약사암을 찾은 답사자는 우리나라 최고 문이라는 뜻의 '동국제일문' 현판이 붙은 일주문을 지나 내리막 계단을 걸어 약사암을 방문하게 된다. 이 일주문만 없으면 정상부 아래 절벽에 사찰이 있으리라고는 짐작하기 어렵다. 약사암은 정말 가파른 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이다.
약사암 최고의 풍경은 산신각 앞에서 범종각을 바라보는 전망이다. 도대체 어떻게 스님들은 저 곳까지 가서 종을 칠 생각을 했을까? 사찰과 범종각 사이는 천 길 낭떠러지이고, 그 둘을 잇는 구름다리에는 지금도 위험하다는 이유로 '출입 금지' 패찰이 붙어 있는데...
하지만 해운사도, 약사암도 국가 지정 문화재는 아니다. 문화재가 되려면 10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야 하고, 역사적 또는 문화적 가치가 뚜렷해야 하는데, 해운사도 약사암도 신라 고찰이기는 하지만 오래된 옛것을 지니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운사에서는 도선굴을 보는 것으로, 약사암에서는 아찔한 절벽 풍광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비록 문화재는 아니지만 다른 곳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것들이니 땀 흘려 올라온 보람은 충분히 맛볼 수 있다.
금오산 최고의 문화재는? 보물 490호 마애보살상신라에 불교가 들어올 때 아도화상이 처음 출현한 곳은 선산 도개 모례(毛禮)네 집이었다. 아도화상은 그곳에서 불교를 전파했다. 최초의 불교 신자 모례에 이어 불자가 된 사람들은 "어디 가노?" 하고 인사하면 "절(毛)에(禮) 간다"하고 대답했다. 그래서 불교 법당이 우리말로 '절'이 되었다.
'모례>절에'는 절의 어원에 대한 일설이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이는 선산(구미) 지역이 우리나라 불교의 모태 중 한 곳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준다. 즉, 신라 최초의 사찰인 구미시 도개면 도리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구미의 금오산에도 불교 유적이 상당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금오산에는 불교 유적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신라 고찰을 자칭하는 해운사와 약사암 정도가 현존 사찰의 대강이다. 그래서 답사자들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도리사 인근인데 이렇게 불교 유적이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인가?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바로 보물 490호인 '금오산 마애보살입상'이다.
금오산 약사암 뒤편에서 산줄기 바깥쪽을 타고 줄곧 걸으면 마애보살입상이 나타난다. 높이가 5.5m에 이르는 이 불상이 국가 지정 보물로 지정된 데에는 세 가지 특징이 크게 기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여래입상이 보물로 지정받은 세 가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