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전남대 본부 앞에서 강제로 모의토익을 응시하게 하는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잉글리시' 제도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많은 분들이 동참해주셨다.
용봉교지
그래도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학본부는 우선 자신들이 밀어붙이면 몇 년 이내에 모의토익 제도가 정착될 것이라고 보는 듯했다. 그런 다음 성적기준을 높이며 고삐를 조일 것이고, 학생들을 저학년 때부터 토익에 특화된 상품으로 만들어 낼 것이다. 과거 교양영어가 정착하는 과정도 그랬다. 선택에서 강제로,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변하는 등 학생의 힘이 약해질수록 경쟁구조는 강화돼갔다.
2학기에는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다. 약 800명의 반대서명도 대학본부 측에 전달하고, 지역사회에도 이 문제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총학생회와 수차례 모임을 하고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 비정규직교수 노동조합에도 지지를 부탁했다. 전국적으로 다른 대학교들은 필수영어과정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조사도 하고 기자회견을 알리는 피켓시위, 전단배포도 했다.
그렇게 한 결과 이 제도에 분노한 약 서른 명의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기자회견을 할 수 있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대학본부와 면담을 했다. 대학본부는 여전히 자신들의 독선을 수정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2학기 모의토익 시험은 강행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지난주 토요일(15일) 피켓시위를 하기 위해 시험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노벨 흉상과 함께 피켓시위를 했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이제 11월이다. 새학기가 시작된 봄부터 이 문제로 고민했다. 여름에도 싸웠고, 또다시 가을에도 싸웠다. 수십 번의 피켓시위를 하고 대자보를 붙이면서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빈정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무관심한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결국 '이 공동체의 진로가 나와는 관계없다'고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미 공동체 생활이란 별로 얻을 것도 없으면서 희생만 요구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아무리 취업이 어려워도, 먹고 살기 힘들어도 결국 우리는 공동체를 통해 세상을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닌가? 대학이 취업률을 높였다고 자랑을 늘어놓지만 그래봤자 절반 이상의 학생들은 실업자가 되는 상황에서 취업률이 해답이 될 순 없다. 나야 어쩌다 운좋게 취업할지도 모르지만 공동체의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면 이 사회는 지속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피켓시위를 하다보면 이런저런 사색에 빠지게 된다. 저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미 나는 저들에게 있어서 사이비 종교를 설파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그러다가 강의시간에 몇 번 본 사람들하고 마주치면 괜히 어색하기만 하다.
대학 입학 직전, 누군가 내게 "대학에 가면 무얼 하고 싶나"라고 물었다. 나는 "연애"라고 답했다. 연애는 자유를 상징했다. 그런데 대학은 강제로 토익시험을 보게 했다. 피켓을 들다보면 또 고민이 깊어지고 그럴수록 더욱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또 피켓을 들고 모의토익이 치러지는 강의실 앞에 선다. 모의토익을 강제하는 건 잘못이라는 사실, 여전히 이 명백한 사실이 건재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또 피켓을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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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연애를 하고 싶었는데, 대학은 토익을 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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