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예감이 들었다.낙타를 보았다. 동물원에서 보던 그 낙타가 아니었다.
윤인철
다시 지프에 올라 30여분을 달리자 사막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낙타와 낙타몰이꾼이 보였다. 이미 사파리를 마친 한 무리의 한국인들이 있었는데, 한 젊은 친구에게 "낙타사파리, 어땠어요?"라고 물었다. 그는 작은 간극도 없이 냉소적인 태도로 즉답을 했다.
"별로에요. 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요즘 만나는 젊은이 중에 간혹 너무 쉽게 말을 내뱉는 경우를 본다. 자기 감정에 솔직하다는 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잠깐 상대방의 감정을 살피고 공감하는 배려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나'는 '우리'라는 공동체 속에서 함께 살아야 하지 않는가? 어떤 말을 하고 행동하기 전에 잠시 쉼표를 찍는 것을 어떨까? 너ㅘ 나의 어색한 만남에 작은 행간을 두는 것이다. 그와의 대답이 끊어졌다. 억지로 대답을 잇자니, 알맹이 없는 외피의 대화가 될 것만 같았다. 가까이에 있지만 너무 먼 곳에 있다는 느낌! '나'만이 있고 '너'는 없는 느낌! '그것'은 있고 '당신'은 없는 느낌!
마틴 부버는 '나-그것(It)'의 관계와 '나-너(You)'의 관계를 구분하며 진실한 인간관계를 강조했다. 사람들과 온전히 만나는 진실한 관계가 성립되지 못했을 경우, 나에게 그들은 단지 '그', '그녀', '그것'인 3인칭 타자일 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혹은 '그녀'가 나와 인간적 신뢰 를 통해 소중한 관계를 맺을 때 '그'는 더 이상 3인칭 타자가 아니라 '너', '당신'이라는 2인칭 관계로 변화된다. 바로 그 순간, 내 앞에 서 있는 '그'는 고독한 세상 가운데 사랑의 끈으로 연결된 '나의 소중한 너'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그들을 보내고 사파리에 참여한 7명의 여행자가 낙타 등에 올랐다. 나를 태울 낙타는 아주 청순하고 어여쁜, 새침때기처럼 통통 튕기는 매력의 암컷이었다. 나와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낙타몰이꾼은 낙타를 일으켜 세우기 전 우리들에게 상체를 뒤로 눕히라고 했다. 그 순간 낙타가 뒷발을 일으키며 벌떡 일어섰다. 몸이 앞으로 튕겨나갈 듯 무게 중심이 앞쪽으로 쏠렸다가, 낙타가 앞발까지 들자 몸이 뒤로 벌러덩 밀려났다.
"오~ 으악~ 이야호!" 5초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공포에서 희열까지 만감이 교차되었다. 낙타가 일어서니 생각했던 것보다 높이가 상당했다.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자 이번에는 낙마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혼자 있어도 외롭고 함께 있어도 외롭다우리를 태운 낙타 세 마리를 끈으로 연결한 후, 맨 앞에서 낙타몰이꾼이 낙타를 사막으로 이끌었다. 바람과 모래바람이 소리 없이 날리고 우리의 침묵의 행군은 시작되었다. 낙타의 되새김질 소리,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방귀 소리와 '따닥따닥' 모래로 떨어지는 배설물 소리! 사막에서 유목하는 낙타, 염소, 양들이 보였고 야생 멧돼지와 수십 개의 풍차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낙타의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장단에 맞추어 엉덩이를 들었다 내렸다 반복하였다. 낙타 엉덩이의 리듬과 내 엉덩이의 리듬이 일치할 때 가장 편안한 낙타사파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만약 '낙타 엉덩이 따로, 내 엉덩이 따로'가 되면 바로 몇 시간도 안 되어 우리의 엉덩이는 벌겋게 부어오르고 멍까지 질 것이다. 나와 낙타의 조화처럼 세상과 나의 장단 또한 맞춰야 하는 것이 삶 아니던가? 장단이 맞지 않으면 누군가 추임새를 넣어주고, 괜찮다며 흥을 돋아주겠지? 그때 난 입꼬리가 아닌 엉덩이를 실룩실룩 거릴 것이다.
한 시간 정도 지나 배고픈 낙타들에게 먹이를 준다고 잠시 나무 그늘에서 쉬라고 했다. 사막 한 가운데 둘러앉아 낙타몰이꾼 리더인 '앨리'가 주는 오렌지와 바나나로 허기를 달랬다. 앨리의 얼굴은 주름투성이였다. 나이가 궁금해 몇 살이냐고 물으니 30살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는 이구동성으로 "에이, 거짓말!" 절규하며 뒤로 나자빠졌다. 결혼도 하고 아이까지 있단다. 사막의 척박한 바람과 공기가 30살 청년의 얼굴을 50살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그나마 거울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일까?
사막의 건물들은 기후를 고려하여 만든 1~2층의 단층들이었다. 소변을 보러 빈 건물을 찾았는데, 그곳은 지나가는 낙타가 잠시 쉴 수 있는 쉼터였다. 그 옥상에 올라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지대를 조망하였다. 그 때 바로 옆에서 아이들의 시끌벅적거리는 말소리를 들렸다. 옥상에서 내려와 앨리에게 물어보니 근처의 유목민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라고 하였다. 교사라는 직업이 어디 가겠는가? 눈과 귀가 솔깃~ 예전과 달리 이제 인도도 시골 곳곳까지 교육, 전기 등 국가의 제반 서비스가 공급되고 있었다.
그것이, 곧 문명화가 그들의 삶의 질과 비례할까?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진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그들은 물질적으로 빈곤하고 가난한, 불쌍한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시각으로 보면 도리어 우리가 위로받아야 할 존재일지도 모르리라. 뒤에 맹수 한 마리를 떨어뜨려놓고 '죽기 싫으면 달려라'라고 협박하는 자본주의의 사회! 우린 정글 한복판에 놓인 스프링벅처럼 맹목적으로 달린다.
여기에서 달리기는 중요하지 않다. 목적지에 남보다 빠르게 도착하는 것만이 가치의 척도일 뿐이다. 달리는 중에도,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도 불안하다. 홀로 있어도 외롭고 같이 있어도 외롭다. 그게 우리들 아닌가 고개를 숙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