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양역귀양역 광장 모습
신한범
귀주성(貴州省)의 성도 귀양(貴阳)에 도착했습니다. 귀주성은 중국 남서부에 위치한 중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한 곳입니다. 평지를 찾기 어려우며 변변한 지하자원이나 관광자원이 없어 내외국인의 발길이 뜸한 곳입니다.
그렇지만 귀주성에는 16개의 소수 민족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도심에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때 묻지 않은 소수 민족의 삶과 자연을 접할 수 있습니다. 성도인 귀양은 해발 800미터에 위치하고 있으며 햇볕이 귀한 곳으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춥지 않아 여행하기에 적합한 곳입니다.
"싸면서 좋은 것은" 없다귀양역에 내려 가장 먼저 한 일은 숙소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중국 여행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입장료와 숙박입니다. 대부분 관광지의 입장료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입장료 때문에 여행 일정을 조율하는 주객전도(主客顚倒)가 여행 기간 내내 지속되었습니다.
숙박은 '주숙등기(住宿登記)' 때문에 외국인은 3성급 이상 숙소에 투숙해야 합니다. 주숙등기란 중국을 방문한 외국인은 24시간 이내에 공안에 거주지 등록을 하는 제도입니다. 위반 시 500위안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저렴한 가격에 깨끗한 숙소를 찾는 것은 여행하는 것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싸면서 좋은 것은 없다'라는 말처럼 숙소가 마음에 들면 가격이, 가격이 저렴하면 숙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일행이 나뉘어 귀양역 근처를 찾아 다녔지만 조건에 맞는 숙소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침내 귀양역 근처 후미진 곳에서 좋은 숙소를 발견했습니다.
단체비자의 악몽숙박을 결정하고 프런트에서 수속을 하다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여권과 비자를 제시하니 프런트 복무원은 여권을 하나씩 넘겨보면서 난감한 표정입니다. '단체비자'가 문제였습니다. 다섯 사람 이상이면 단체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저렴한 비자비와 간편한 절차 때문에 단체 비자를 발급하였는데 문제는 유명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기차역이나 호텔에 근무하는 분들이 '단체비자'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짧은 중국어로 단체비자를 제시하며 "这是签证(이것이 비자)"라고 중국어로 설명해도 복무원은 여권에 부착된 비자만 찾고 있습니다. 여권과 비자에 명시된 이름을 대조하며 설명해도 복무원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한참을 여권을 뒤적이든 복무원이 마침내 웃으면서 여권 하나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여권에는 작년에 중국을 여행한 분의 기간이 만료된 개인 비자가 있습니다. "不是 不是(아니오)"라고 설명하여도 요지부동입니다.
30여 분이 경과하자 뒤쪽에서 다른 고객과 우리 일행의 불평이 터져 나옵니다. 중국어, 영어, 우리말로 터져 나오는 소란함에 당황한 복무원이 울상을 하며 상급자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사무실에서 나온 상급자도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여권만 면밀히 살피며 비자를 찾고 있습니다. 끝내 찾지 못하자 상급자는 복무원에게 여권을 복사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간신히 수속이 끝나니 미안한 얼굴로 메모지에 무엇인가 적어 저에게 주며 웃습니다.
"My english is very poor(저는 영어를 잘 못해요)"수줍은 모습으로 건네는 복무원 아가씨의 메모를 보자 화가 나서 거칠게 항의한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그는 자신의 업무에 충실했던 것뿐인데.
저 역시 "没关系(괜찮아)"하며 웃습니다. 소박하게 쓴 쪽지와 복무원 아가씨의 미소가 여행자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여행의 즐거움은 거대한 관광지나 화려한 건축물에 있는 것이 아니겠지요. 나와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고 이해할 때 성공적인 여행일 것입니다. 복무원의 소박한 미소에 오히려 소심한 제 자신이 반성됩니다.
귀양 관광 아침 7시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사위는 여전히 어둡습니다. 중국은 모든 지역이 북경 시간을 표준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중국내에서도 다섯 시간의 시차가 있음에도 정치적인 논리로 북경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북경과 귀양의 거리가 2500km인데 같은 시간을 사용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