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입담과 능청스러운 연기력을 갖춘 개그맨 신동엽
오마이스타
EBS <다큐 프라임>을 떠나, 새롭게 옮긴 프로그램은 SBS <신동엽의 300>(2009년 10월 5일 첫방송)이었다. 시청자 300명과 사회적인 이슈들을 앙케이트 형식으로 풀어보는 퀴즈쇼였다. 당연히 300명의 시청자를 섭외하고, 퀴즈를 내는 것이 업무의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영웅, 신동엽과의 잊지 못할 첫 만남.
"오빠! 막내가 오빠 엄청 좋아한대. 진짜 팬이었다는데?"
"어... 그래."소파에 누워있던 그는 쑥스러운 듯 몸을 반대로 돌리면서 건성으로 웃어넘긴다. 프로그램의 메인 MC인 그와 막내작가인 나는 별로 마주칠 기회가 없었고, 그저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정도가 전부였다. 녹화 전날, 방송 대본과 퀴즈 문제를 인쇄하느라 정신없는 내 어깨를 감싸는 손. 담당 피디 H 였다.
"음... 이제 대본 더 안 뽑아도 될 것 같다."
"네? 아직 3부 밖에 안 나왔는데요." 대답을 듣고, 한참 말이 없던 피디는 계속해서 대본을 뽑는 나에게 제안한다.
"대본 그만 뽑고, 커피 한 잔 할래?"
그때는 정말 몰랐다. 대본을 더 이상 뽑지 않아도 된다는 게 바로 프로그램의 '종영'을 의미한다는 것을. 피디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고, 눈치 없이 계속 대본을 뽑았던 것이다. EBS에서 SBS <신동엽의 300>으로 프로그램을 옮긴 뒤, 불과 몇 달 만에 다시 피디 H를 따라 <SBS 스페셜>로 가게 되었다.
마지막 회식 날, 분위기는 굉장히 우울했다. 정작 신동엽과 연기자들은 이런 상황을 여러 번 겪어본 것처럼 태연했고, 오히려 제작진들을 격려했다. 회식이 점점 마무리가 될 무렵, 누군가 어깨동무를 하며 장난을 걸어온다. 신동엽이었다.
"너, 형 좋아한다며? 사진 한 번 찍어야지."내 이름을 기억하는 그가 고마웠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난 뒤, KBS 연예대상 대기실 복도였다. 화려한 무대와는 달리 KBS 공개홀 대기실 복도에는 프로그램 제작진부터 출연자와 매니저, 스타일리스트까지 몰려있어 정신이 없었다. 복도 끝에서 깔끔한 수트 차림으로 걸어오는 신동엽. 나는 그에게 인사를 건넸고, 그도 나의 눈을 정확히 맞추며 웃어보였다.
'아, 아직 나를 기억하는구나.'내 착각이 부끄러움으로 바뀌는 데는 불과 몇 초 걸리지 않았다. 무대로 올라가는 긴 대기실 복도의 모든 사람들과 일일이 안부 인사를 나누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복도를 가득 채운 피디와 작가 그리고 방송 스태프는 신동엽과 오랜 시간 함께 일했거나, 현재 일하고 있고, 또 일을 할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최고 MC인 신동엽이 몇 달 함께 했던 작가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치열하고, 냉정한 곳이다. 한 달에도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첫 방송, 혹은 마지막 방송을 한다. 긴 대기실 복도를 가득 채운 피디와 작가들. 소위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방송 프로그램의 제작진이다. 방송이 끝나면 그들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바로 시청률이다. 매일 아침마다 그 시청률 하나에 울고 웃는다. '울고 웃는다'는 표현이 워낙 관용적이라, 자칫 낭만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현실은 매우 심각하다.
시청률은 프로그램의 생존을 결정한다. 시청률이 낮다는 것은 광고가 잘 붙지 않는다는 것이고, 시청자들의 관심이 그만큼 적다는 것이다. 방송국은 대중성과 수익 측면에서 가치가 떨어지는 프로그램을 오래 붙들고 있을 이유가 없다. 낮은 시청률이 계속 되면, 곧바로 그것을 대체할 파일럿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기존의 제작진을 교체한다.
애초 <신동엽의 300>은 매주 월요일 오후 10시에 방영되었다. 동시간대 경쟁프로인 <가요무대>와 드라마 <선덕여왕> 등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방송 시간을 옮겼으나 역시 그 시간대의 경쟁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과 <출발 비디오 여행>에 밀렸다. <전국노래자랑>은 두 자릿수 시청률을 놓친 적이 거의 없는 장수 프로그램. <신동엽의 300>의 조기종영에는 이런 배경도 작용했을 터다.
일정 시청률을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종편과 케이블 채널이 워낙 다양해졌을 뿐만 아니라, 시청률이 집계되는 본 방송대신 스마트폰이나 PC를 통해 시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청률이 높다고 해서 다 괜찮은 것일까? 아니다. 시청률이 아무리 높아도, 상대적으로 장년층 시청자가 많은 프로그램은 광고가 잘 붙지 않는다.
방송의 생존을 결정하는, 단 4000가구의 시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