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건축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궁궐이 자연처럼 느껴지는 창덕궁.
김종성
계절이 계절이라 각양각색의 외국인을 포함한 많은 시민들과 함께 창덕궁 안으로 들어갔다. 창덕궁은 1405년(태종 5) 완공되었으며, 면적은 43만4877㎡의 넓은 궁궐이다. 이 궁궐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그만 소실되었다가, 몇 번의 화재를 겪고 1647년(인조 25)에서야 복구가 완료되었다. 창덕궁은 많은 재앙을 입으면서도 여러 건물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왔는데, 금원을 비롯하여 다른 부속건물도 비교적 원형대로 남아 있다. 창덕궁은 지난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덕궁은 조선 왕조의 공식 궁궐인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모습을 드러낸 궁궐이다. 창덕궁은 정궁인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 하여 '동궐'이라고 하고, '이궁(離宮)'이라고도 하는데, 이궁이란 나라에 전쟁이나 큰 재난이 일어나 공식 궁궐을 사용하지 못할 때를 대비하여 지은 궁궐을 말한다.
임진왜란 때 조선의 궁궐이 모두 불타버리자 왕실은 경복궁을 폐허로 버려두고 창덕궁만을 재건해 정궁으로 사용했다. 그래서인지 조선의 왕들 중에는 경복궁보다 창덕궁을 더 좋아한 이들이 많았다. 많은 왕들이 머물며 나라를 다스린 탓에 창덕궁은 자연스럽게 조선 왕조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궁으로써 창덕궁이 생겨난 유래는 이렇다.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잡은 이방원은 형 이방과를 2대 왕 정종으로 임금 자리에 앉혔다. 왕위에 오른 정종은 다음 해에 수도를 옛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으로 옮겼다. 형제들 사이에 살인이 벌어진 한양이 싫었기 때문. 왕위에 욕심이 없었던 정종은 즉위한 지 2년 만에 동생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된다.
이방원은 3대 태종으로 왕위에 올랐다. 태종은 아버지가 수도로 삼았던 한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형제의 난이 일어났던 경복궁으로 돌아가는 것을 께름칙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경복궁 동쪽에 새로운 궁궐을 세우도록 했고, 그렇게 지어진 것이 창덕궁이다. 창덕궁은 왕위를 둘러싸고 왕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비극에서 탄생하게 된 것.
평탄한 곳에 질서 정연하게 건물이 들어선 경복궁과는 달리 창덕궁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궁궐로 유명하다. 다른 궁궐들이 왕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지어졌다면 창덕궁은 자연 지형에 맞게 배치되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한다. 그래서인지 궁궐 내에 오래된 노거수(老巨樹 : 오래되고 큰 나무)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이즈음 창덕궁을 빨갛게 물들이는 단풍나무는 물론, 천연기념물이기도 한 회화나무, 느티나무, 향나무, 소나무, 뽕나무, 다래나무 등은 오랜 세월이 느껴지듯 구부정한 자세로 서서 궁과 전각, 석탑을 지키고 있어 눈길과 발길을 머물게 했다. 수백 년 풍상을 이겨낸 노거수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한 창덕궁은 자연과 건축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궁궐이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태풍에 허리가 꺽인 가슴 아픈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