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운동 중심에 서 있던 노 목사 부부

[서평] <둘이 걸은 한 길> 이해동·이종옥의 살아온 이야기

등록 2014.11.13 17:45수정 2014.11.13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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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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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꼭 자랑해야 한다면 나는 약한 것을 자랑하겠습니다. (신약성서 고린도후서 11장 20절)"

감옥에 가는 게 싫고 행여나 갈까 봐 겁이 나서 체면만 차릴 정도로 행동했다고 하는 어느 목사의 회고록은 이렇게 시작한다.


한국 민주화 운동에서 큰 축을 담당하는 3·1민주구국선언사건과 5·17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당사자이며, 목요기도회를 이끌고 동아투위를 지원했다. 모두가 숨죽이던 시절, 차마 나서지 못했던 일들에 앞장섰던 이해동 목사는 보잘 것 없는 인생의 경험을 기억나는 대로 기록했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당시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의 인물이 이렇게 차분하게 아니 수줍게 시작하니, 군대 다녀온 이들의 허풍 섞인 과장을 기대하지는 않았더라도, 기름기 하나 없는 그 담백함에 살짝 맥이 빠지기도 한다.

시대에는 떳떳하고 사람에는 겸손하다

오히려, 아내 이종옥 여사의 활약상이 도드라진다. 투옥한 남편의 구명을 위해, 부인들 간의 우산 시위, 부채 시위를 조직하고, 사건 변호를 거부한 변호사의 이유를 빠짐없이 적어 국제 엠네스티로 보내어 사건을 해외에 알리는 등 남편들을 구명하기 위한 그녀는 활극에 가까울 정도로 거침없다.

책 제목을 <둘이 걸은 한 길>이라 붙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는 2권인 서한집을 읽으면서 확신한다.


이해동 목사로 돌아와 수줍게 당신의 이야기를 펼쳐놓으시지만, 그 내용만은 7, 80년대 숨죽여 살았던 그 누구보다도 당당하다. 그만하면 "나, 이런 사람이야"하고 가슴을 펼 만도 하건만, 그저 " 하느님 발길에 채여 별 수 없이" 살아왔다고 한다.

그런 분이 법정 안에서 고문 사실을 당당히 밝히고, 민주화운동의 지킴이었던 목요기도회를 이끌어 왔다. 시대에는 떳떳하고 사람에는 겸손하다. 티끌만한 우월함이라도 크게 부풀리고, 나보다 못한 사람을 무시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이 시대, 이 목사의 자세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믿음, 사랑, 가족, 연대의 의미를 되새기는 서한집

오래되었지만 고전이 촌스럽지 않은 이유는 그만큼 시대를 관통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83~88년 국외 체류 때 받은 181통을 정리한 제1부 '망명 서한', 80~81년 '김대중 사건'으로 복역할 때 받은 190여 통을 담은 제2부 '옥중서한'으로 모두 370여 통의 편지를 묶어냈다.

김대중 일가, 문익환 일가, 이우정, 이문영·김석중, 리영희, 고은, 박영숙, 안병무, 한승헌, 염무웅 등 편지를 주고 받은 7~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인명사전 같은 점도 대단하지만,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믿음, 사랑, 가족, 연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그 내용(특히 이종옥 여사와의 편지)일 것이다. 

부인 이종옥 여사, 가족과의 편지는 애틋함, 사랑, 존경이 넘쳐난다. 특히 이 여사는 '김대중 사건'으로 복역할 때 거의 하루도 빠짐이 없이 이 목사에게 편지를 쓴다.

하루하루 있었던 일, 세상일들을 빠짐없이 전하는 것은 물론 편지지 하나를 고르는 것에도 정성을 들여가며, 이 목사의 안위를 챙긴다. 2권을 읽는 내내 '이토록 사랑이 가득 차 있으니 고난을 이겨내고 남들이 가지 않았던 길을 갈 수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지인들은 또 어떠한가. 서슬 퍼런 시절 감옥에 잡혀 들어갔으면 외면할 법도 하건만 꿋꿋이 제 자리를 지킨 채 응원하고, 이 목사의 가족들과 함께 해준다.

4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자행되는 오늘 날, 어려움을 연대와 믿음으로 이겨냈던 과거와 달리 아픔을 아픔으로 공감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여 모두가 삶의 각개전투를 벌여야 하는 오늘날이 더욱 살기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힘든 이에게, 사랑하라, 연대해라, 믿으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가혹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 하루가 힘든 이가 있다면, 이 부부의 편지를 읽으라 권하고 싶다. 내 안의 고통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니.

아, 참고로 서한집에 나오는 바우할아버지는 문익환 목사이시다.
#이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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