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에 머리가 닿을 듯 좁은 우리 내 가장 높은 나뭇가지에 걸터 않는 수리 부엉이 한쌍.
이명주
실내 사파리 입구에는 붉은 전구 장식이 달린 대나무 수 그루가 있었다. 혹시 하고 잎사귀를 만졌으나 역시 가짜였다. 그리고 관비둘기를 시작으로 다양한 조류들을 만났다. 안내문에 따르면 관비둘기는 습지가 있는 삼림 저지대에 살며, 떨어진 과일을 주로 먹고, 성격이 예민해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반짝이는 조명 옆 밀폐된 우리, 딱딱한 바닥에 듬성듬성 깔린 건초, 가운데 놓인 인공 사료가 전부였다. 관비둘기 두 마리는 보는 내내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본격적으로 사파리 관람을 시작했다. 거의 모든 동물들이 비슷한 형태의 공간에 수용돼 있었다. 콘크리트나 샌드위치 판넬로 지은 가건물 형태의 우리였고, 높이는 평범한 키의 성인이 서거나 무릎을 조금 구부려야 하는 정도였다.
관비둘기 다음으로 만난 수리 부엉이 한쌍은 우리 내에서 가장 짧지만 가장 높은 나뭇가지에 걸터 앉아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내부 벽면에는 페인트로 그린 하늘과 숲, 강물이 있었다. 너무나 인공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에 원근감을 살린 자연 그림은 되레 괴리감을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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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금강 앵무새 청금강 앵무새는 계속해서 아래위로 고개를 흔드는 행동을 반복했다. ⓒ 이명주
그리고 특별한 이유로 눈에 띈 새 한 마리. 우리 외벽에는 '2NE1 컴백무대에서 CL 누나 어깨에 올라가 있던 그 앵무새'란 홍보 문구가 있다. '이게 무슨 인연인가!' 싶었다. 하지만 확인 결과, 이 청금강 앵무새는 당시 방송에 나왔던 것과 동종일 뿐 실제 주인공은 아니었다. 녀석은 지켜보는 수분 동안 계속해 고개를 앞뒤로 흔들어댔다. 부산 ㄷ동물병원 수의사에게 현장에서 찍은 영상을 보여준 결과, 스트레스성 이상행동일 수 있다고 답변했다.
의사가 '정형행동' 가능성을 언급한 동물은 더 있었다. 정형행동이란 격리 사육되는 동물들이 특정한 행동을 반복하는 병적 증세로, 고착행동 또는 상동행동이라고도 한다. 앞서 만났던 설가타 거북을 포함, 실내 사파리에 있는 반달곰, 미어캣, 맹그로브 모니터 등이 그랬다. 아기 반달곰 한 마리는 우리 좌우를 쉴 새 없이 오락가락했고, 미어캣 한 마리는 무리들 중심으로 분주히 뛰어다니다 벽을 향해 점프하는 행위를 반복했다. 맹그로브 모니터는 앞발로 뽀득뽀득 소리가 날 만큼 계속 유리벽을 긁었다.
입구에서 본 아기 일본원숭이와 같이 홀로 갇힌 검은손긴팔원숭이의 경우, 사람들이 먹이를 주는 작은 구멍에 제 손가락을 끼우곤 나를 쳐다보다가, 차갑고 썰렁한 바닥에 놓인 뿌리없는 긴 나뭇가지를 잡고 크게 움직이는 과정에서 유리벽에 펑 소리를 내며 부딪히기도 했다. 좁은 수조에 들어 있는 악어를 촬영하던 중에도 악어 한 마리가 수족관 벽을 입으로 세게 쳐 깜짝 놀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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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좌우를 계속해 뛰어다니는 아기 반달곰 ⓒ 이명주
하지만 더더욱 혀를 내두르게 하는 광경들이 있었다. 하나는 조류 무리 속에 있던 슈가 글라이더. 실내 중앙에 나뭇가지를 세우고, 그 꼭대기에 환한 조명과 함께 걸어둔 새장이 그들의 집이었다. 슈가 글라이더는 주로 나무 위에서 생활하고 야행성이며 하룻밤에도 상당 거리를 활공할 수 있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곳 슈가 글라이더들은 새장 속 너덜너덜한 인조털 손가방 안에서 작은 소리에도 놀라 오들오들 떨었다.
자연에서라면 강기슭이나 늪, 평지 등에 살았을 물왕도마뱀은 물 한 방울 없는 우리 안의 말라붙은 배설물 옆에 몸을 낮추고 있었다. 안내문에는 '물 속에서 30분 이상 잠수할 수도 있다'고 되어 있었다. 내 눈 앞 풍경은 의아함을 넘어 도마뱀 상태가 우려스러울 정도였다. 방문 다음 날 ㅂ동물원 대표와의 전화 통화에서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을 전해들었다.
"방수시설 결함으로 누수가 생긴다. 물을 채워도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적정한 온도의 물을 받아 2~3시간에 한번씩 (물왕도마뱀에) 주는 긴급조치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