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사이즈에서 100사이즈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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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택배가 배달됐다. 자그마한 상자였는데 아내 이름이었다. 사인 해주고 아내에게 주었더니 전광석화처럼 빠른 손놀림으로 상자에 감긴 테이프를 해체한다. 팬티였다. 그것도 6개나 됐다. 며칠 전인가 지나가다 팬티가 필요하다 혼잣말 한 적이 있었는데, 귀신같이 듣고 바로 쇼핑으로 연결한 것이다. 스포티한 디자인이 눈에 익은 것을 보니 여러 번 홈쇼핑 채널을 지나치다 본 것이었다. 중요한 점은 모두 사이즈 '100'으로 구입했다는 것이다.
보통 105 정도로 넉넉하게 허리가 조이지 않는 것을 선호하는데, 아내는 당연히 100 정도로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즘 누가 105를 입느냐고, 100으로 입으라 했다. 복부에 지방을 차곡차곡 저장한 체질이라 걱정이 앞섰다. 아내가 "아마도 선조가 추운 극지방에 계셨었나 보네. 족보 찾아보셔"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지구 온난화가 지속돼 빙하기가 다시 오면 나만 살아남을 거라 큰소리친다. 한마디 덧붙인다.
"나는 미래종족이야." "나중에 인류를 구원할 몸을 가지고 있단 말이야."팬티를 곧바로 입었을 때는 불편을 몰랐다. 그런데, 오후가 되면서 머리도 좀 아프고 컨디션이 안 좋았다. 처음에는 몸살기가 있나 싶어 두통약을 먹어 봤는데, 영 나아지지 않았다. 저녁에 샤워를 하고 나서 아픈 것이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이윽고 100 사이즈 팬티가 배를 조여서 발생한 해프닝이란 것을 알았다. 그러나 어찌하랴. 6장이나 구입해서 1년은 입어야 하는데... 아내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운동해서 입으란다.
예전에 입었던 팬티를 몰래 다시 입고 며칠을 지낸 후, 갈아입을 팬티가 없어, 구입한 팬티를 다시 입었다. 한참 후 며칠 전 상황이 다시 생각나서 고민하게 되었다.
'유레카!' 번개처럼 내리치는 한 줄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팬티 앞뒷면 밴드를 가위로 네 군데 자르는 것이다. 조금은 허리의 여유가 생겼다. 그 사이로 다시 네 군데를 자르니 비로소 배가 편안해졌다. 합해서 허리와 배를 감싸고 있는 밴드 여덟 군데를 가위로 자르니 몸이 자유로워졌다.
105의 몸매로 100 사이즈로 맞추려 하니 몸이 고생한다. 이놈의 세상. TV에서는 화면에 최적화된 몸매의 훈남들이 등장하고 그에 따라가려니 뱁새가 황새 따라가는 격이다. 남자가 봐도 멋진 몸들이 TV를 종횡무진 한다. 요리조리 채널을 돌려봐도 건강하고 멋진 녀석들이 등장한다.
늦은 밤 치맥에 한잔하며 이 세태를 한탄하지만, 잠자리에 들며 야식 먹은 것을 다시 후회한다. 내일 일어나면 오전에 러닝머신 2시간은 해야겠다. 아직도 튼튼한 100짜리 팬티가 장롱 안에 차곡히 개어져 있으니까...
한 달 후, 아내가 운동화 만드는 한 메이커 브랜드에서 신축성 좋은 팬티가 나왔다며 입어보라 건네주었다. 사이즈 100인 팬티였다. 역시 약간 답답했지만 잘 맞는다고 말해주었다. 오늘 밤에 아내 몰래 가위질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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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정감과 강인함을 좋아하며, 인간 '종'이 세운 모든 것을 반성하고, 동물과의 교감, 그리고 자연과의 일체를 실현하고자 하며, 지구어머니의 한 생명체으로서 생물학적 다양성과 지구온난화 및 핵탈피에 관심있는, 깨어있는 시민이되고자 합니다~(나주혁신도시 16개기관의 지역사회에 대한 적극적 사회적기여를 이끌어 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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