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유랑문화제 웹자보 일부.
이권형(유랑문화제 기획팀)
나에게 올해의 유랑문화제는 작년의 유랑문화제보다 허전하고, 촛불문화제보다 덜 보람되었다.
'콜트콜텍 투쟁 승리 촛불문화제'(이하 촛불문화제, 2013년 2~4월)를 할 때 시를 읽기 위해 무대에 오르는 임재춘 조합원은 안쓰러우리만치 부들부들 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 순간에 한없이 기뻐했고,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그때는 김경봉 조합원의 사회자 멘트를 한 줄 한 줄 함께 소리 내어 읽으며 써 내려갔다. 점점 천막농성장으로 오는 사람들이 줄어가니 기운이 빠지기도 했지만, 농성자들과 프로그램 하나를 준비하는 과정은 마치 거대한 바위를 들어 올리는듯 위대했고 즐거운 일이었다.
폐공장에서 하는 문화제와 천막농성장에서 하는 문화제가 달랐듯, 농성장을 떠난 유랑문화제는 준비하는 사람들이나 출연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그 이전과는 다른 것이었다. 준비하는 노력에 비해 공연의 성공 여부는 우연성이나 장소의 적절성 등에 더 많이 좌우되었다. 가끔은 기후 변화에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유랑문화제는 성취감보단 준비과정에서 느끼는 고달픔이 컸다. 농성장에서 만나는 관객에게는 긴 설명이 필요 없었고, 관객의 수와는 상관없이 사람들 사이에 진한 공감대가 있었다. 그래서 시도는 새롭고, 과감했다. 그러나 유랑문화제로 거리에 나선 콜트-콜텍 해고자들은 불특정 다수가 오고가는 거리에서 낯선 이방인이 되어야 했다.
정치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유랑문화제로 사용할 수 있는 장소는 점점 줄어갔다. 기껏 장소 사용 승인 절차를 마치고 공연을 하러 갔는데, 공연장소를 먼저 차지하고 있는 종교단체와 막막한 말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때론 상인들과 고성을 주고받은 후 눈물 뚝뚝 흘리며 공연을 시작해야 할 때도 있었다.
작년과 올해 유랑문화제를 통해 느끼는 거리의 온도 차이 또한 컸다. 배우 김보성의 '으리'가 유행을 타던 올해, 그 '으리 열풍'에 담긴 냉소와 보신주의는 차가운 공기가 되어 거리를 채우고 있다고 느껴졌다. 거리의 시민들은 작년보다 더 무심해져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유랑문화제의 동력 자체를 흔들지는 않았다. "그건 사장님 생각이고요, 저희 직원들은 오늘 정말 음악 감상 잘 했어요", "올해 또 하네요. 어이쿠, 아직 해결 안 됐어요? 그 회사 안 되겠네"라는 목소리가 더 생생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