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군의 폭격에 맞은 세르비아의 국방성 건물정현순
"저기 저 건물이 세르비아 국방성인데 나토(NATO)의 폭격을 맞은 자리입니다.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는 이유는, 처음에는 복구를 하려고 했지만 예산부족으로 못했는데 어느 날부터 사진작가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으면서 새로운 관광지가 된 것이지요. 지금은 베오그라드의 명소가 되어 많은 관광객이 오고 있습니다."폭격을 맞은 국방성 건물이 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그라드와의 첫 만남이었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폭격의 자리는 참혹한 전쟁의 현장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러고 보면 언제인가 신문, 방송에서 몇 줄의 뉴스로 보도된 것을 본 기억이 나기도 했다. 먼 나라의 이야기를 바로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다니. 왠지 슬픈 역사가 많은 나라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곳곳에 남아있는 총탄의 자리가 전쟁의 잔재를 말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도시 한복판에 이런 곳을 그대로 놔두었네." 여기저기에서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말이었다. 우리나라만큼 굴곡이 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또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니 어쩌면 우리나라보다 더 아픈 역사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차창 밖으로 총탄을 맞은 몇몇의 건물들이 더 지나간다.
세르비아는 전쟁 전만 해도 유고연방 중에서는 가장 잘 사는 나라였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40번 파괴되고 다시 지어진 베오그라드 언니, 올케, 나는 인천공항을 출발한 지 18시간 만에 발칸4국 여행 첫 일정인 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그라드에 도착했다. 첫 일정이라 설렘과 기대에 한껏 부풀었다. 다뉴브강과 사바강의 합류점에 위치한 베오그라드는 크로아티아어로 '하얀 마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동로마제국 당시 이 지역을 점령한 로마인들이 흰 벽돌로 성벽을 둘러쌓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수도로서 세계의 수많은 기업들이 들어와 있으며 종합대학과 300여 개의 학교들, 과학예술 아카데미와 각종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어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세르비아는 잦은 전쟁을 치른 나라이기도 하다. 세계1,2차 대전의 격전지이기도 했고, 최근에 일어났던 전쟁은 1980년 유고연방의 지도자 티토(세르비아계)가 사망한 이후 유고연방은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코바, 크로아티아 등으로 분열되었다. 연방종주국이라 하는 세르비아가 보스니아 독립을 저지하기 위해 일어난, 발칸반도 역사에서 가장 심한 전투가 있었던 곳이 바로 세르비아다.
오랜 전쟁의 결과로 베오그라드란 도시는 40번 파괴되고 다시 지어졌다. 그런 전투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도시는 회색빛처럼 느껴졌다. 도시의 곳곳에 남아 있는 전쟁의 흔적을 본 후, 세르비아의 도시들이 폐허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고풍스러운 중세 분위기와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 환경이 남아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