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아이 어린이집 보내려면 훈련소 교관되야...

나주빛가람의 아침 풍경

등록 2014.11.10 11:24수정 2014.11.1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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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서 나는 수돗물 소리에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지난 밤에 26도로 설정해 둔 난방모드를 해제시키고 문을 열고 나와 보니, 거실로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빛을 측면 배경으로, 와이프가 아들녀석 어린이집에서 '함평국화축제' 견학을 간다고 김밥을 준비하고 있었고, 탁상용시계는 7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 쪽 씽크대 위에 김밥 재료가 줄맞춰 가지런히 누워 있고, 도마 옆에 제법 큰 주방칼이 대기하고 있었다.

어제 김밥김 50장, 김밥햄, 단무지, 우엉 그리고 아들녀석 좋아하는 초코** 2개 포함하여 만 원 넘게 들여 마트에서 구입한 것이었다. 그냥 한 줄에 천오백 원하는 김밥을 3줄 사서 보내는 게 낫겠다고 말했지만, 아내는 웃어버렸다.

나는 아직도 두어시간 걸려서 직접싼 김밥과 김밥집 아주머니가 정성스레 준비해서 파는, 김밥의 시간× 비용× 만족도의 총 효용 가치의 비교 우위의 차이를 정확히 계산해 내지 못하겠다.

이후, 아내는 모락모락 김이나는 햅쌀로 한 밥을 퍼서 그릇에 담아놓고 식히고 있는 사이, 잠옷 바람의 아들 녀석은 빨리 먹고 싶다고 옆에서 재촉이고 있었다. 아내가 잠깐 여유가 생기자, 금새 달려들어 새끼코알라처럼 매달려 손발 꽉낀 채 모자의 정을 깊게 나누고 있었다. 요사이 아내가 회사 일로 1박2일 워크숍에 다녀오느라 더 그리웠었나 보다.

나하고 있을 때는 말도 잘듣고 고분고분하던 녀석이, 엄마만 있으면 나는 파워레인져의 악당이 되버린다. 나중에 아내 없을 때 태권도 겨루기 하자하고, 유도로 바꿔서 혼내줘야겠다.


아내가 먼저 출근하고, 나는 아들녀석 제대로 씻고, 제대로 옷 입게 하느라 20여년 전 군인정신을 되살려 아들녀석 동작 하나하나 초재고 살피고 지시하는 훈련소 교관으로 빙의된다.

자주 헷갈리는 팬티 앞 뒤 구분하기, 옷 단추꿰기, 바지접힌 부분 펴기, 특히 가을용 양말 신기에 주안점을 두고 가르치느라, 내 머리에 어느새 새치가 하나둘 늘고 있다. 


내년에 초등학교 보내려고 하니 미흡한 부분에 자꾸 마음이 여간 쓰인다. 귀엽게 옹알이하고 기어다닐 때가 엊그제 같은데, '사회화' 교육을 준비시키려 하니 매사 다 부족한 것 같다.

특히, 욕실에서 물을 틀고 놀기, 칫솔물고 돌아다니기, 세수할 때 소매 젖는 것, 다씻었다고 나왔는데 콧구멍에 물기를 품은 코딱지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때, 화가 나기도,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언제 사람이 되려나?

애들용 로션을 듬뿍 발라주고, 선크림을 꼼꼼히 발라준다. 안 했다가는 불시에 오전에 직장 간 아내에게서 확인 문자가 온다.

"로션은?  선크림은?  잠바는?"

아이에 관하여 관리가 안 됐을 때 오는, 후환이 두렵다. 군대에서 취침 전 점호가 싫었다. 특히 꼬장꼬장한 인사계, 그날 기분이 안좋은 당직사관들이 그랬다. 가끔 아내가 상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무섭다.~^^

겨우, 어린이집에서 오는 차를 태워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파트 공사 현장 내의 거푸집 두드리는 망치 소리가 종 소리처럼 메아리 쳐 울리고, 진입로로 덤프 트럭이 질주하는 소리, 크레인 돌아가는 기계소리, 레미콘 차량의 시멘트 퍼 내는 소리가, 호수 주변 대기에 가득한 채 태양은 처녀지 빛가람을 밝게 비추며, 오늘 아침도 힘차게 도약하고 있었다.  
#빛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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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정감과 강인함을 좋아하며, 인간 '종'이 세운 모든 것을 반성하고, 동물과의 교감, 그리고 자연과의 일체를 실현하고자 하며, 지구어머니의 한 생명체으로서 생물학적 다양성과 지구온난화 및 핵탈피에 관심있는, 깨어있는 시민이되고자 합니다~(나주혁신도시 16개기관의 지역사회에 대한 적극적 사회적기여를 이끌어 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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