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발생한 구룡마을9일 오후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7-B지역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고물상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 된 화재는 주변 15개동으로 번지고 진압 되었다.
이희훈
[최종신 보강 : 9일 오후 9시 52분] "지난 7월에도 불... 구청이나 시에서 아무런 대책 안 세워""한순간에 모든 걸 다 잃었어... 아무 생각이 없어요."
서울 최대 규모의 무허가 판자촌인 구룡마을에 25년째 살고 있는 이선순(60)씨는 모든 것을 잃었다. 9일 오후 구룡마을에서 발생한 화재는 이씨의 집을 삼켜버렸다. 이씨는 오전에 집을 나서며 입었던 옷 한 벌만을 건졌다. 뒤늦게 집에 뛰어올라갔지만 흔적도 없이 타 있었다.
오후 1시 40분께 구룡마을 내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나선 이씨는 타오르는 불길을 눈 앞에서 지켜만 봐야했다. 이씨는 "끌 수 있는 불이었는데 무방비 상태로 다 타버렸다"라며 망연자실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씨 가족 중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것 뿐이다. 함께 사는 아들은 회사 근처에서 숙식을 해결해 화재 현장에 없었다. 갈 곳 없는 이씨는 구룡마을 입구에 있는 주민자치회관에서 이날 밤을 보내야 한다. 그는 "뭘 모르는 사람들은 임대주택으로 가라고 하지만 그럴 돈이 없다"라며 힘없이 말했다.
자치회관은 지난 7월에 난 불로 집을 잃은 구룡마을 이재민들이 임시로 머물고 있는 곳이다. 이날 불이나 집을 잃은 이재민까지 합치면 80여 명의 사람이 주민자치회관 또는 개포 중학교에서 이날 밤을 나야 하는 상황이다. 바느질로 생계를 꾸려온 이씨 뿐 아니라 80여명의 이재민 모두 어렵게 하루하루를 이어가던 이들이다. 이재민들에게는 당장 다가올 겨울이 큰 걱정이다.
그러나, 지난 7월에 발생한 화재에 대한 입주대책도 마련되지 않은 채 11월을 맞은 구룡마을 주민들은 구청의 빠른 대처를 기대하지 않고 있다. 구청을 향한 불신이 팽배했다.
이씨는 "강남구청이 사람들이 흩어지길 바라서 개포 중학교로 사람을 보낸다, 저기 가려면 큰 길을 위험하게 건너야 하는데 왜 굳이 저기로 사람을 보내냐"라며 "보상없이 내보내려고 저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7월에도 불이 났는데 구청이나 시에서 아무런 대책도 세워주지 않았고 결국 또 불이 났다"라며 "25년 살면서 5~6번 불 날 위기가 있었는데 결국 이렇게 불이 나버렸다"라고 허탈해했다.
유귀범 구룡마을 주민자치회장은 "이미 예견된 사고다, 겨울철 화재에 대비해달라고 수없이 요청했지만 강남구청 직원은 4년 동안 얼굴 한 번 못 봤다"라며 "7월 화재도 방치했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라고 일갈했다. 유 회장은 "다른 데에서 불이 났으면 난리가 났을 거다, 그런데 구청장은 5분 거리를 와보지도 않는다"라며 "구룡마을 주민들을 개똥같이 아는 거"라고 성토했다.
유 회장은 "이 지역에 살지도 않는 사람이 낙하산으로 구청장이 된 거부터가 잘못된 것"이라며 "1번 달고 나오면 지나가는 개도 당선된다는 강남지역이라 '거지들이 화재가 나봤자 강남주민은 나를 찍는다'는 생각인 거 같다"라고 목소리 높였다.
한편 판잣집 등 무허가 가건물이 밀집되어 있는 구룡마을은 지난 1988년 형성됐으며 저소득층 약 110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비닐과 목재 등 불에 타기 쉬운 자재로 지어진 가건물이 밀집되어 있고 전선도 복잡하게 얽혀있어 화재 위험이 높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실제 지난 2009년부터 올해 8월까지 모두 11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2신 대체 : 9일 오후 7시 2분] '판자촌' 구룡마을 화재로 '독거노인' 1명 사망... 추가 피해자 확인 중 서울 무허가 판자촌인 구룡마을에서 발생한 화재는 2시간여 만인 9일 오후 3시 34분 경 완전 소진됐다. 현재까지 발견된 사망자는 1명이지만, 피해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후 6시 45분 경 주아무개(71)씨가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주씨는 혼자 살고 있으며 평소 거동이 불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혼자 살고 있던 이아무개씨의 생사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아 소방당국과 주민들이 급히 확인에 나선 상태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구룡마을 내 고물상에서 시작된 불이 주거 밀집지역인 7-B 지구로 번져, 전체 48개동 가운데 16개동 60세대가 연소됐다.
소방당국의 한 관계자는 "마을 인근에 주차된 등산객의 차량으로 인해 소방차 진입에 곤란을 겪으면서 초기 진압이 쉽지 않았고, 가건물이 밀집돼 소방용수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날 화재로 구룡마을 주민 150여 명이 인근 교회와 개포중학교 강당으로 긴급 대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