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사 가는 길내장산 주차장에서 내장산으로 가는 길, 노랗고 빨간 단풍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지요하
묵주 손에 꼭 쥐고...충남 태안에서 전북 정읍의 내장산까지는 3시간이면 충분한데, 늦게 가면 주차할 자리가 없다고 새벽 6시에 출발했지요. 버스 안에서 김밥으로 아침을 먹고, 9시쯤 내장산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42명 일행 중 일부는 4시간 코스의 산행에 나서고, 일부는 운전 기사가 가이드를 겸하는 택시를 타고 산을 올랐습니다.
택시 3대씩 한 조를 이루고 산길 요소요소에 잠시 하차하여 내장산의 풍경을 보며 택시 기사의 설명을 재미있게 듣곤 했습니다. 그리고 정상의 주차장에서 하차한 다음 내장산 박물관을 견학했습니다. 제법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택시기사를 겸한 가이드의 유머러스한 설명을 들으며 배꼽을 잡기도 했지요.
그리고 오전 10시 30분쯤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점심 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일행 중 일부는 내장사를 보기로 했습니다. 왕복 2시간 코스였습니다. 시끌벅적한 시장길을 관통한 다음 내장사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나는 매표소를 무료로 통과하였습니다. 2천 원인가를 지출하지 않게 되었지만, 신분증을 보여주고 그대로 통과하면서 '내 나이가 벌써...?' 쓸데없는 비애를 머금기도 했습니다.
만추 무렵이라 나뭇잎이 많이 떨어졌고 또 떨어지는 중이었지만, 아직 찬란한 채색은 현재진행형이었습니다. 눈을 시리게 하는 노랗고 빨간 단풍들의 광활한 아우성에 파묻히며 걸음을 떼었습니다. 단풍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사람 구경도 하는 셈이었습니다. 주중인데도 인파가 길을 가득 메운 형국이었습니다.
나는 묵주를 손에 쥐고 걸었습니다. 어디를 걷든 길을 걸을 때는 반드시 묵주를 손에 쥐는 것은 내 오랜 습관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난 4월 16일부터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묵주 기도를 하곤 하지요.
묵주기도를 하며 나는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보곤 했습니다. 남녀노소 무수한 사람의 가슴을 보고 또 보고 했습니다.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사람을 보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포옹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 때문에 나는 더욱 간절히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윽고 내장사에 도착하여 대웅전 앞으로 가서 손에 묵주를 쥔 채로 부처님 앞에 깊이 머리 숙여 예를 올린 다음 불사가 진행 중인 경내를 둘러 보았습니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사람을 보고 싶은 마음을 접었습니다. 그 대신 많은 사람이 내 가슴을 보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내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을 보는 사람의 눈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이 한량 없었습니다.
나이 드신 남자 어른 한 분이 내 가슴의 리본을 보고 살짝 미소 짓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단 한 번의 그 위안을 안고 오후 12시 30분쯤 예약된 음식점에 도착한 직후 나는 음식점의 여주인에게 내 스마트폰의 충전을 부탁했습니다. 이제는 내게도 스마트폰이 세상을 읽는 창구가 되어 있는 탓이었습니다.
점심 식사 후 우리 일행은 버스에 올라 김제시 모악산으로 향했습니다. 그때부터 버스 안에서는 노래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노래방 기기를 활용하여 모두들 돌아가며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고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반드시 취흥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건강 문제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으니, 취흥이 날 리 없었습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것이 미안하여 가끔 손뼉으로 장단을 맞추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내 한 손에는 묵주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일행 중 두어 사람이 내게로 와서 술도 권하고 춤추기도 권했지만,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내 나이 탓이기도 할 터이고, 어쩌면 내 손에 들려 있는 묵주 때문이기도 할 터였습니다.
나는 스마트폰을 켜고 세상을 읽기도 했습니다. <한겨레>에 실린 이명수 심리기획가의 글 '어떻게 골든타임을 거론하나'을 읽으며 또 눈물을 닦았습니다. 다음에는 <오마이뉴스> 기사 '76일 기다렸지만 외면…대통령에게 애걸 않겠다'를 읽으며 또 눈물을 훔쳤습니다. 세월호와 관련한 내 눈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언제나 멎게 될지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일행은 모악산의 금산사를 관람했습니다. 나는 미륵전 안의 엄청난 크기의 불상들을 보고 찬탄을 머금으며 법당 밖에서 예를 올렸습니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 불상 앞에 엎드려 절을 올리는 불교 신도들도 있었습니다.
즐기고 노는 가운데... 눈물 훔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