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선장이 세월호 선장이 지난 8월 29일 오후 광주지방법원에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 해운 임직원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쉽게 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며칠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세월호 참사 관련 재판에서 이준석 선장에게 사형이 구형되었다는 보도를 본 후였다. 그를 죽여서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한국사회는 어떻게 변할 수 있는 것일까. 바지도 제대로 안 입은 채 승객을 버리고 맨 먼저 배를 탈출한 선장. 재판정에서도 내내 횡설수설 자신의 잘못을 비켜나기 위해 애를 썼다는 한 비루한 인생이 있다.
구해 달라고 유리창을 두드리던 어린 학생들. 죽음 앞에서 절규하던 친구들. 쇠문을 긁다가 손톱이 다 해진 죽음들. 그 아비규환. 어떤 말도 가닿을 수 없는 저 깊은 절망과 고통과 슬픔의 바닥들이 있었다.
그리고 304명의 죽음과 실종 이후에도 이어진 열한 분의 죽음들이 있다. 무거운 책임을 이기지 못하고 진도실내체육관 인근 야산에서 목을 매단 단원고 교감 선생님, 구조 활동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이광욱·이민섭 잠수사, 유가족을 돕다 진도대교에 몸을 던진 고 김아무개 경위, 세월호 현장지원 활동을 마치고 돌아가다 헬기추락사고로 숨진 정성철·박인돈·안병국·신영룡·이은교님, 자원봉사 도중 과로로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한 문명수 목사님, 아들을 잃은 시름에 급격히 건강을 잃고 쓰러져 태범이의 곁으로 간 인병선님 등…. 도합 315명의 죽음과 실종. 이 무수한 죽음의 행렬들. 거기에 다시 한 사람의 죽음을 더하면 어떤 게 변하는 것일까.
진짜 죽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진짜 죽여야 할 대상들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다시는 이런 슬픔과 고통의 바다에 우리 모두가 빠지는 아픔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이준석 선장에게 사형을 선고하면 우리 모두는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일까. 그만이 살인자였나, 학살자였나.
나는 이준석이 아니었는가만약 내가 그 배에 타고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나는 승객들을 구하려다가, 동료들을 구하려다가, 친구들을 구하려다가, 아이들을 구하려다가 함께 죽어간 그 숱한 의인들처럼 그 배에서 함께 죽어갈 수 있었을까. 나만의 탈출구를 향해 가지 않고,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까.
어릴 적 아무 것도 없는 밑바닥 인생으로 단가 낮은 비정규직 용접공을 하며 살 때였다. 누구도 내게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주지 않았을 때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 조그만 월세방 하나 가지는 게 꿈의 전부이던 때였다.
잡부 숙소에서 낯모르는 한 사내와 함께 살며 지하 30m 깊이의 지하철 공사장에서 일할 때였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 H빔에 볼트를 죌 구멍을 뚫기 위해 절단기로 쇠를 불고 있었다. 반대편 홈으로 굴착기 등 장비들에 주유하는 기름 파이프가 내려와 있는 것을 몰랐다. 불길이 H빔을 뚫고 지나가는 순간 갑자기 펑 소리가 나며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나는 몇 미터 뒤 진흙탕으로 나동그라졌다. 놓쳐 버린 절단기 호스는 터져 LPG가스가 뿜어져 나오고 기름 불꽃은 이내 거대한 불기둥이 되어 치솟기 시작했다. 지하에는 30여 명의 작업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일하고 있는 중이었다. 불길을 잡을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도망 가, 도망 가"라고 몇 번 소리쳤지만 이내 유독가스에 숨이 턱 막혀 왔다. 그 철계단을 어떻게 올라왔는지 모른다. 뿌옇게 유독가스가 사람들보다 먼저 상층으로 올라와 있었다. 간신히 올라온 지상은 한없이 한가로웠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엎드려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소방차들이 오는 소리가 멀리서 쉬지 않고 왱왱거리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내 인생은 이제 끝났구나'하는 공포와 함께 '도망가야 돼'라는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부리나케 뛰어 근처 잡부숙소로 숨어들었다. 장판 밑에 넣어 둔 몇만 원이 생각나서였다. 어디로 갈 것인가. 그때 나는 도망가는 것조차 포기했다. 누군가 잘못되어 그 책임을 져야 한다면... 내가 감옥에서 10년을 살든 20년을 살든 그 다음의 조그만 삶이라도 보장된다면, 다시 살아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체념이었다.
불길은 금세 잡혔고, 작업자들 누구도 다치거나 죽지 않았다. 지상에 있던 작업자들이 명민하게도 지상에 있는 기름탱크의 밸브와 절단기로 연결된 모든 LPG통들의 밸브를 신속하게 잠갔던 것이었다.
그런 나와 이준석 선장은 무엇이 다를까. 우리 안에 있는 수많은 이준석은 어떻게 할 것인가? 며칠 전 팽목항에 함께 갔다 왔던 소설가 김훈 선생을 만나 술을 한 잔 나눴다. 김훈 선생 역시 "나는 이준석 선장과 어떻게 다른 것인가"하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픈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1980년대 수많은 이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끌려가고 죽어갈 때, 자신은 그들을 외면하고 혼자만 살기 위해 기자라는 안정된 자리로 도망친 사람이었다고 했다. 누군가가 고통을 호소할 때 수없이 많이 눈감고 외면해 왔다. 그런 우리 모두가 그들을 죽인 것 아닌가라는 말씀이었다. 내 생의 알리바이를 은폐하기 위해, 우리 모두의 모순적인 삶들을 위해 이준석 또한 살려놔야 한다는 말은 아니었다. 비정규직 선장 한 사람, 침몰하는 배 속에서 살아나온 또 한 사람의 생존자에 불과한 그 사람 하나만을 주홍글씨마냥 단죄하여 세월호 참사의 모든 공동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이 시대의 야만에 분노한다는 말씀이었다.
이 국가적 재난 앞에 그 어떤 책임자도 사실상 단죄를 받지 않았다. 지리한 국회 국정조사, 검찰조사, 감사원 감사까지 하나같이 이 국가와 정부의 상층은 큰 잘못이 없단다. 모든 책임은 선원들 일부와 해운조합원들이나 사주인 유병언에게 있다는 설명이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여전히 버티고 있다. 안전사회는 일산에서 그리고 분당에서 다시 불태워지고, 함몰된다. 지난 대통령 선거개입의 주역이며, 세월호와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 의심받는 국정원은 사이버공안탄압에 앞장선다. 각종 관피아는 여전히 임명되고, 모두 안녕하다.
국가의 모든 책임은 말단 하급자들에게 내려졌다. 해양경찰청이 별도로 있든, 국무총리 산하로 가든 도대체 무엇이 변할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속칭 '유병언 법'은 만들어질 수 있지만, 이 법이 만약 사주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며 이 국가와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을 덮으려는 것이라면 그것 역시 사회적 기만에 다름 아니다.
누군가를 '다시' 죽여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