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만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허성갑
이 시를 늘 읊조렸지만 되새겨 보니 고은은 여행을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 아닌 사고의 전환을 의미하고 있다. 문학에서 독보적인 성취를 이뤄낸 고은은 밀실에서도 자기로부터의 탈출이 가능한가 보다. 우리 같은 범인이야 '아메리카가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해질 무렵 남해 바닷가에 서서 떠다니는 섬이라도 바라 봐야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의 관조가 가능할 일이다.
나와 동갑내기인 작가 이병률은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에서 멋진 말을 했다.
'시간을 럭셔리하게 쓰는 자,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나에게도 여행은 시간을 버리거나 투자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여행은 시간을 들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게 있어 여행은 시간을 벌어오는 일이었다. 낯선 곳으로의 도착은 우리를 100년 전으로, 100년 후로 안내한다. 그러니까 나의 사치는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감히 시간을 사겠다는 모험인 것이다.'여행을 떠났다는 일만으로 '시간을 럭셔리하게' 썼다고 볼 수는 없지만 '시간을 벌어오는 일'이라는 말에는 깊이 동감한다. 이번 터키 여행을 통해 서기 350년부터 현재까지 비잔티움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에서, 그리고 오스만 제국이 이스탄불에서 무슨 일을 벌였던가를 대충이지만 입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게 됐으니 천년이 넘는 시간을 사들인 셈 아니겠는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여행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곳을 보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게 되는 데 있다.' 프라하와 부다페스트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여러 도시를 다녀온 지인의 사진 중 내 눈에 가장 인상적인 곳은 어느 아담한 호숫가였다. 일정이 어긋나서 들린 곳이라는데, 웅장한 성이나 깎아지른 절경도 없었지만 평온하고 아늑해 보였다.
약간의 일탈은 뜻하지 않은 행운을 주기도 한다. 스페인을 여행한 또 다른 지인의 스틸컷 중에서는 구겐하임이나 가우디보다 'NO WAR(전쟁은 그만)'라고 쓰여있던 디자이너 마리스칼의 작은 스튜디오가 더 좋아 보였다. 지인을 통해 새로운 눈을 갖게 됐고, 나를 통해 지인은 새로운 곳을 가게 됐다.
프루스트의 정의를 이렇게 고쳐 써 본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눈으로 새로운 곳을 발견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