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가에 쭈그리고 앉아 이 많은 고들빼기를 다듬었다. 삭신이 쑤신 이유다.
신광태
"어떻게 고들빼기를 무만 하게 키웠어?""키운 거 아냐. 지들이 저절로 자란 거지."지난주 형님께서 "잎이 시들기 전에 와서 고들빼기나 캐가라"라는 말에 찾아 온밭. 옥수수를 심었던 묵밭엔 온통 고들빼기 천지다. 밭곡식을 위해 뿌렸던 두엄과 퇴비의 영향 때문인지 그 크기는 약간의 과장을 보태 열무보다 크다. 슈퍼 고들빼기다.
"한 번 먹어볼래?" 형님이 내미는 고들빼기는 마치 가을배추 뿌리를 먹는 느낌이다. 고들빼기 뿌리의 쓴맛이 없다. 더덕이나 도라지 등 뿌리식물들이 그렇듯 고들빼기 또한 늦은 가을엔 연한 맛과 담백한 맛이 짙다. 인삼을 씹는 느낌도 난다.
직접 묵밭에서 캐보는 가을 식물. 도시에서 아옹다옹 사는 사람들이 과연 이런 행복을 알까. 산골에서 살기 때문에 누리는 특권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열심히 고들빼기를 캐고 있는 내게 형님은 "후회할 텐데..."라고 말하며 웃는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이젠 됐겠다 싶어 밭가에 군데군데 모아둔 고들빼기를 수거했다.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뭐 딱히 후회할 일은 아닌 듯했다.
"나 집 안 청소 좀 하고 나올 테니까, 다듬고 있어. 어떻게 하는지 알지? 먼저 흙을 깨끗이 털어내고 물을 붓고 여기 까만 부분을 칼로 다듬어야 해." 무시해도 유분수지, 그 정도는 나도 안다. 아내는 형님께서 고들빼기를 캘 기회를 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는지 집 안 청소를 하겠단다. 형님의 호의에 비하면 그 정도는 당연한 일이다.
대충 흙을 털어낸 고들빼기를 물에 담가 휘휘 저었다. '그 다음 뭐 하랬더라? 아! 칼로 까만 부분을 다듬어야 한다'고 했다.
마당 앞에 있는 수도에서 쪼그리고 앉아 다듬다가 다시 펑퍼짐하게 퍼질러 않아 다듬는 것을 반복하길 수차례.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 다듬은 양보다 남아있는 것이 더 많다.
2년생 식물인 고들빼기는 가을에 한 번 더 잎을 내면서 봄에 싹을 틔웠던 머리 부분이 유독 까맣다. 마치 누군가 먹물을 덕지덕지 입혀 놓은 듯하다. 얼마나 단단히 붙였던지 칼로 도려내지 않으면 청결해 보이지 않는다. 그간 시장에 내놓은 깨끗한 것들은 손질했기 때문에 이런 수고로움을 몰랐다.
두 시간여 지나자 허리도 아프고, 발도 저리다. 삭신이 온전한 곳이 없다. 생각 같아서는 손빨래하듯 북북 문대고 싶다. 잎이 망가지기 때문에 하나하나 낱개로 다듬어야 한다는 아내의 말이 떠올라 그렇게도 못하겠다. 청소하러 들어간 아내는 한 번쯤 내다 볼만도 한데 당최 꿩 구어 먹은 소식이다. 어쩌자고 내가 이 많은 고들빼기를 캤던가. '후회할 걸'이란 형님의 말이 무슨 말인지 그제야 감이 왔다.
"다 했어? 고생했네. 이제 고들빼기김치 담그는 게 힘들다는 거 알겠지?"에구머니나 아내는 일부러 큰집 식구들과 짜고 내게 이런 일을 시켰던 거다. 지난봄, 고들빼기김치를 담글 때 난 캐는 역할만 했다. 씻고 다듬는 건 당연히 여자들의 몫이라 생각했다. 아내는 내게 제대로 복수를 한 거다.
아내에 대한 복수, 좀 치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