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성보 안에 있는 용두돈대의 총을 쏘기 위해 낸 구멍으로 바라본 바다.
이승숙
광성보 주변의 바다는 물살이 빠르고 거세기로 유명해서 따로 '손돌목'이라 부른다. 더구나 암초도 많아서 물길을 모르는 사람이 손돌목을 지나가다가는 암초에 부딪히거나 거센 물살에 휩쓸릴 수도 있다. 어재연 장군은 침착하게 때를 기다리다가 적함이 광성보 부근에 닿았을 때 명령을 내렸다.
"대포를 쏘아라!"그러자 명령만 기다리고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대포를 쏘았다. 순간 하늘이 찢어지고 땅이 무너져내리도록 굉음들이 울려퍼졌다. 조선군은 때를 놓치지 않을 심산으로 적함을 향해 연거푸 대포를 쏘았다.
조선군이 쏜 대포는 큰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다 위에 떨어졌다. 그러자 마치 이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미군 군함이 대포의 방향을 광성보 쪽으로 돌려 포탄을 날렸다. 조선군과 미군은 약 15분 동안 포탄을 서로 날렸다. 광성보 앞바다는 천지를 분간할 수 없이 포연에 휩싸였다.
탐사대장으로 나섰던 미국 해군 중령 블레이크가 "이처럼 좁은 바다에서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토록 집중 포격을 당한 것은 처음이었다. 남북전쟁에서도 이런 포격은 당해보지 않았다"고 말했을 정도로 당시 조선군은 적을 향해 많은 양의 포탄을 쏘았다.
그러나 그렇게 많이 포탄을 날렸지만 조선군은 미군 측에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했다. 대포의 명중률이 낮았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군이 보유하고 있던 대포들은 강화해협 쪽으로 방향이 맞춰져 있었지만 포신을 좌우로 돌리는 것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목표물을 조준할 수가 없었다.
대포들은 통나무로 된 포좌에 고정되어 있어 신속하게 사격방향을 조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또 대포의 사정거리도 짧을 뿐만 아니라 포탄 또한 파괴력이 없는 그저 커다란 쇠구슬 정도에 불과해서, 설혹 명중을 시켰다 해도 배에 구멍이 나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에 반해 미국은 남북전쟁을 치르면서 무기의 단점을 보완했기 때문에 대포의 성능이 매우 뛰어났다. 명중률도 높았을 뿐만 아니라 포탄이 날아가는 거리 또한 길었다. 또 목표물에 맞으면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많은 사상자를 냈다. 그래서 어재연 장군은 부득이하게 후퇴를 명령할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미 군함 한 척이 암초에 부딪혀 물이 새어드는 바람에 미군은 강화해협을 따라서 서울까지 올라가겠다는 계획을 접고 본대가 있는 작약도로 돌아갔다.
조선군과 미군 사이의 최초 전투였던 이 싸움에서 조선군은 분전했지만 그것은 미군에게 위협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조선군의 화력이 보잘것없다는 것을 노출시킨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은 열흘 뒤에 또 다시 강화도 상륙작전을 결행한다. 1871년 6월 10일, 미국 함대는 해병대와 해군 650명을 태우고 다시 초지진 앞에 나타났으니 이른바 '신미양요'가 바로 그것이다.
광성보의 단풍, 그때의 충정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