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식탁>의 저자 서울대 자율학부교수 장대익교수가 27일 서울시 마포구 한 식당에서 독자들과의 대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이희훈
이날 식탁의 또 다른 주제인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 즉 학문의 융합에 관해 다른 각도의 질문이 날아오기도 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모두 일명 '문과인'으로 살아왔다는 한 회사원은 "연말에 제 서재를 봤더니 자연과학 책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제가 대학을 졸업한 지 이제 15년입니다. 그 당시만 해도 다양한 학문의 통섭과 융합, '학제간 연구'라는 게 키워드였는데 지금도 이름만 바뀌었지, 큰 변화는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토로했다.
한국 인문학계에서 수년간 유행처럼 돌고 있는 학문 간 융합, 통섭이라는 이슈가 큰 의미 변화 없이 껍데기만 남았다는 비판이었다. 장 교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융합이라는 소리가 안 들어가면 연구 펀드(투자) 받기도 힘들죠. 문제는 진정성인데, 일단 모여서 펀드를 받고 나면 다시 쪼개져서 연구하다가 각자의 연구를 묶어 내는 식이 많습니다. 융합이라는 말 자체가 구호가 되고 유행이 된 것 같아요.전 융합이라는 말은 '결혼'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20여 년 동안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살아온 사람이 만나서 어렵게 맞춰가며 살아가듯이, 학문도 서로 맞추려면 힘들죠. 그래서 가짜도 많고요. 저도 통섭이라는 말 함부로 쓰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진화론-창조론, 갈등 해결할 열쇠는?일상에서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을 겪을 때마다 겪는 답답함을 호소하는 독자도 있었다. 3년 전부터 진화 생물학과 인지 과학론을 공부해왔다는 정계은씨(32)는 "다윈의 이론을 깊이 공부 하지 않고 섣부르게 저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라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2012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2명 중 1명이 창조론을 믿는다고 답했다. '조물주 없는 진화론'을 믿는 사람은 15%뿐이었다. 장대익 교수는 이 같은 통계가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진화론은 학교에서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재작년 시조새와 말의 진화론을 다룬 교과서 내용을 종교 단체에서 빼려고 했는데, 그걸 막아내기도 했지요"라고 답했다. 또 "한편 과학 서적 판매율을 보면 또 진화론과 뇌과학 분야가 제일 높습니다. (진화론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학교에선 이상하게 교육받고 마는 사람도 있죠"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화론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한 대학원생이 덧붙여 말했다.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 우리나라에선 이를 다 아우를 수 있는 의제와 교육이 부족한 것 같아요. 아까 맛있는 만남을 강조하셨는데, 한국 공교육에선 이를 맛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죠. 오늘처럼 이런 식탁에도 참여하고, 책도 읽으면서 개인이 애쓰는 방법밖에 없는지... 우리가 알아서 노력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면 답답하기도 합니다."융합과 통섭을 외치고, 다양한 학문을 '퓨전'하자고 외치면서도 실제 교육, 연구 현장에선 제대로 맛보기 힘든 현실. 장 교수가 천천히 입을 뗐다.
제대로 된 과학 교육 절실한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