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하용 전시회 포스터
서촌갤러리
포스터로도 사용된 보랏빛 얼굴 그림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검고 넓은 가슴과 어깨는 또래보다 큰 체격이었던 소년을 닮았다. 보라색 얼굴에 굳게 다문 입술은 그림에 대한 의지를, 검게 칠한 눈은 무엇이든 눈에 담아내려는 마음으로 읽힌다. 머릿속에서 상상력의 씨앗을 피워내는 일러스트레이터처럼 그림 나무와 풀이 머리에서 자라고 있다.
크레용으로 그린 소년의 두 얼굴은 색감의 대비가 이채롭다.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닮은 두 얼굴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바깥을 보고 있다. 왼쪽의 얼굴은 노란 피부색에 주황빛이 도드라졌다. 초록빛 앞머리 조금과 파란 머리카락이 빗으로 빗은 듯 가지런하다. 하얀 바탕 위에서 선명한 좌측과 달리 오른쪽 얼굴은 무채색이다. 어두운 얼굴을 둘러싼 분홍빛 바탕은 자신의 빛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었던 소년의 꿈이었을까?
소년이 얼마나 그림을 좋아 했는지 유리벽에 전시된 습작들이 말해준다. 소년은 연습장, 성적표, 가정통신, 학습지, 스케치북 등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어디에든 그렸다. 펜으로 곰, 코끼리, 물고기를 그리고 기하학적인 무늬를 채워 넣는가 하면 ㅠ, ㅁ, ㅍ 구도를 그린 스케치북 아래 부분에는 각 구도가 줄 수 있는 안정, 강조 따위의 느낌을 꼼꼼하게 적어 놓았다. 어느 종이건 그림으로 그려내고 끊임없이 상상하던 소년의 꿈과 창작세계는 작품과 습작들로 굳은 물감처럼 남아 있다.
갤러리 한 켠에는 작업하던 책상이 재현되어 있다. 그가 쓰던 하얀 팔레트에는 세상을 두 가지로 구분하듯 어두운 색과 밝은 색의 물감들이 뚜렷하게 나뉘어 굳어 있다. 납작한 붓, 뾰족한 붓, 미처 칠하지 못한 물감을 조금씩 머금은 붓들이 바싹 마른 채 돌아오지 않는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