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 기자회견지난 7월 14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유족들이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최근 내가 적을 두고 있는 성당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주임신부님과 상의를 한 후 주일 교중미사 중 주임신부님 강론 다음에 내가 해설대로 나아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천주교인 선언'의 취지를 설명하고 서명을 부탁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내 말이 진행되던 중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신자들 중 일부가 반발했다. 그만하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성당 안이 시끄러워져서 나는 준비한 말을 다하지 못하고 서둘러 마쳤다. 그러면서도 "들어주셔서 고맙다"는 말로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많은 신자들이 박수를 쳤다. 박수를 친 신자들이 더 많았다는 직감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성당 로비에서 서명용지를 여러 장 펴놓고 서명을 받는데, 곱지 않은 눈으로 "강요하지 말라"는 말을 던지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고장 토박이로 본당 초창기부터 신자생활을 해온 내게도 낯선 얼굴이었다. 전혀 모르는 신자였다. 최근 전입해온 신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혹 모처로부터 밀명을 받고 파견 나온 사람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그가 진짜 신자이고 정상적인 신자라면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차마 그런 소리를 하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도 함께….
성당 안에서 미사 중에 반발을 한 사람들은 대개 중년 이상의 신자들이었다. 그들이 세월호 얘기를 그만하자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세월호 문제를 이제는 그만 덮어 버리고 잊어 버리자는 뜻일까?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과연 온당한 것인지 아닌지를 한번 생각이라도 해본 것일까?
성당 안에서 미사를 지내며 세월호를 그만 잊자고 하는 신자들이 과연 미사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드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천주교의 미사는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통, 참혹한 십자가상의 죽음 사건을 계속적으로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이다. 예수님의 부당하고 처절한 고통과 죽음을 기억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확인하고 선포하는 행위가 바로 미사다.
그런 미사에 참례하고 있는 신자들이 세월호를 그만 잊자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그만 기억하자고 하는 것과 성격이 별반 다르지 않다.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과 세월호를 잊자고 하는 것은 전혀 별개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은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태도는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세가 아니라고 나는 단언한다.
그리스도 신자가 아니라면 얼마든지 세월호 문제를 잊고 덮어 버리자고 주장할 수 있지만, 일상적으로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로서는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신자들은 미사에 참례하면서 늘 자신의 신앙상태를 스스로 살펴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예수님의 마음을 지니려는 자세,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 사물을 보고 판단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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