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무덤전시관 5층 옥상에 올라가면 멀리 노란 국화동산이 보이는데 그곳이 미당의 무덤이다.
이윤옥
미당 서정주는 20대무렵부터 잡지 <조광 10월호>에 "스무살 된 벗에게" 라는 친일 수필을 비롯하여 "반도학도 특별지원병 제군에게>, <사이판 섬에서 전원 전사한 영령(일본군)을 맞이하여>, <오장마쓰이송가> 등 열렬한 친일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해방된 조국의 국어교과서에서 다뤄주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그가 민족의 위대한 시인인줄만 알고 자랐다.
물론 그의 시는 위대하다. 그리고 미당 문학관 벽면을 가득 메운 위대한 업적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거기엔 단서가 붙는다. 시가 단순히 입 언저리에서 맴돌다 나오는 것이 아닌 가슴 저 밑바닥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면, 그리하여 그의 삶 자체를 존경하고 싶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위대한 것이라는 단서 말이다.
일부 미당을 옹호해주는 사람은 말한다. "시는 시고 삶은 삶" 일뿐이라고 말이다. 맞다. 그러나 틀린 말일 수도 있다. 만일 이완용이 위대한 시인이었다면 과연 우리가 "시와 삶"이 다른 것이라고 감히 그를 변호 해줄 수 있을까?
'서정주 문학관'을 돌아 나오며 이날 저녁 있을 그의 '문학축제' 준비로 부산한 문학관 마당과 마주쳤다. 과연 저녁에 유명한 분들이 모여 '미당에 대한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궁금했다. 그러나 올라오는 차가 막힐지 몰라 이내 서울로 향해야 했다.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나는 후배 시인으로 "시와 삶"이 유리 될 수 있는 것인지, 또 그래도 되는 것인지 자신에게 몇 번이고 묻고 물었다. 그러면서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나라가 망했는데 500년 사직을 지켜온 조선에서 이에 대한 반성을 하는 사람 하나 없으면 어찌 후손을 볼 것인가!"라며 절명시(絶命詩) 4수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매천 황현 (1855~1910) 이 지은 시다.
"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니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버렸어라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날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기만 하구나"글을 안다는 것, 글로 영혼의 씻김을 표현한다는 것은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이 없어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쉽지 않기에 후세에 울림이 오래도록 순결하게 남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고 보니 미당 고향에 핀 국화는 색만 노랗지 향기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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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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