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유린이 자행되던 전북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생활시설에서 만난 지적장애인 연인이 지난 10월 21일 전주시에서 결혼했다. 시설이 폐쇄되고 1년 6개월 만이다. <사진 제공 - 전주장애인가족지원센터>
전주장애인가족지원센터
시설 내에서 인권유린에 시달리던 지적장애인 연인들이 탈시설 1년 6개월 만에 결혼했다. 강제노동 등으로 작년에 폐쇄된 전북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생활시설에서 나온 지적장애인 A(남, 47)씨와 B(여, 34)씨가 지난 10월 21일 전주시 덕진구 한 예식장에서 지역사회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관련기사 :
재산갈취에 성폭력 은폐까지, 장애인 단체가 어찌...)
강제노동과 성폭력 등 인권유린 실태가 발각되어 작년 5월 폐쇄된 전북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는 모두 30명의 장애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의 생활은 처참했다. 연구소는 남성들은 멀리 제주도 농장까지 보내 강제 노동을 시켰고, 장애인들 사이에서 벌어진 성폭력도 은폐했다.
이곳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은 이미 강제노역, 폭력 등에 시달리다 SBS TV 프로그램 <긴급출동 SOS> 등을 통해 구조된 이들이다. 연구소는 겉으로는 상처받은 이들의 치유와 자립을 지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 시설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이들도 있었다. 이번에 결혼한 A씨와 B씨가 대표적인 사례. 이들은 결혼을 원했지만, 시설은 이들의 결혼을 추진하지 않았다.
A씨는 "단지 사진 한 장 찍고 끝나는 결혼을 원치 않았다"면서 적극적으로 결혼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연구소는 5월 원장이 구속되면서 폐쇄됐다. 거주 장애인들은 전북 도내 몇 곳의 생활시설로 전원 조치가 이뤄졌다. A씨와 B씨도 진안의 한 생활시설로 옮겨졌다.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이들은 독립된 공간에서 함께 살아야 했지만, 도내 생활시설에서는 이들만을 위한 공간을 마련할 수 없는 구조였다.
"시설에서 형식적인 결혼 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 이들의 전원 조치를 도운 김병용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국장은 "생활시설은 거주인의 경우 결혼을 하면 독립된 공간을 마련하거나 여건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한국사회 시설의 현실은 여력이 되지 않는다. 사실상 결혼은 불가능하다"면서 "그렇다보니 분리해서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이들의 경우에도 어려웠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이들은 진안의 생활시설에서 작년 여름에 나와 전주시에 따로 거처를 마련했다. A씨는 동료 장애인과 서신동의 한 임대아파트에 거주했고, B씨는 공동생활가정에서 다른 여성장애인들과 함께 거주했다.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은 고통이었다. B씨는 공동생활가정에서 자유롭게 A씨를 만날 수 없는 것이 힘들었다. 당연히 공동생활가정에서 적응하지 못했다.
결혼을 위해서는 함께 살아갈 집이 필요했다. 이들의 형편으로는 쉽지 않은 일. 전주시는 A씨의 생활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LH공사 등에 협조를 적극적으로 요청했다. 그리고 전주시 아중리에 있는 한 원룸을 찾았다. A씨는 작년 겨울 그곳으로 이주했다.
이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다. A씨와 B씨에게는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졌던 가족들이 있었다. 전주시는 A씨와 B씨가 장애우권익연구소에서 나왔던 작년 6월경, 가족들의 행방을 찾았다. 그리고 이 둘이 결혼을 원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지역사회에서 민간단체들의 도움이 있다면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가족들은 논의 후 연락을 주겠다는 의견을 전주시에 전달했다.
하지만 그 후, 가족들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전주시 김길례 장애인복지 담당자는 "충분히 설명을 드렸지만,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져 있었고, 혹시 사고를 쳐서 연락을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마음에 연락을 받지 않았던 것 같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2014년이 되고 1월 전주시장애인가족지원·인권센터 김정숙 대표가 B씨의 후견인 역할을 하면서 결혼 준비 작업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성인들이 자유의사를 가지고 결혼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A씨와 B씨는 비장애인들이 볼 때는 지적장애가 있어 보이지만, 생활하는 데 있어 지역사회 도움이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주시와 민간단체 협력 속에 1년 6개월 만에 결혼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