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7일 한국은행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권우성
"금리가 내려가면 좋은 것 아닌가? 가뜩이나 어려워 죽겠는데 대출 이자라도 싸면 은행 이용하기 좋고, 대출 받아 집 산 사람들 부담도 덜겠고… 나쁘지 않다고 봐. 은행에 돈 쌓아 놓고 적금 이자 받아먹는 부자들이야 배가 아플지도 모르지만…."
술자리에서 친구와 논쟁을 벌였다. 저금리 정책이 그리 나쁜 게 아니라는 친구는 낮은 금리가 고환율과 물가폭등을 부를 수 있다는 내 주장에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당장 매달 은행에 갚아야 하는 대출이자라도 줄어드는 게 어디냐며 정부의 금리 인하를 두둔했다. 그러나 논쟁은 오래가지 않았다. 친구의 아픈 구석을 내지른 나의 '독설' 때문이었다.
"언제까지 원금은 못 갚고 이자만 내고 살래? 물가마저 오르면 행여나 살맛나겠다." 지난 15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2.00%로 하향 조정했다. 이명박 정부 말 2.75%이었던 기준 금리는 2013년 5월 9일 2.50%로, 2014년 8월 14일 2.25%로 내려갔다. 이번은 박근혜 정부 들어 세 번째 금리인하다. 이번에 조정된 기준금리 2.00%는 2009년 2월 12일(2.00%)에 이어 가장 낮은 기준금리 타이틀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하며 '유로 지역 등의 경기부진'과 '국내 경기 주체들의 심리적 위축과 낮은 물가' 등을 이유로 내세웠다. 소비 심리가 되살아나지 않고, 저물가 기조가 이어지기 때문에, 성장세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선 금리 인하가 필요하며 물가안정 기조가 유지될 수 있도록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는 것이 금융통화위원회 설명이다. 그러나 이는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며,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겠다는 위험천만한 초이노믹스와 '척하면 척' 장단 맞추기에 지나지 않는다.
배춧값 한 포기 1만 원 시대가 그리운가"배추가 비싸니 내 식탁에는 배추김치 대신 양배추 김치를 올리라."2010년 9월 서민 물가가 폭등했다. 이명박 정부는 물가를 잡겠다고 'MB물가'를 선정해 특별 관리했지만 날마다 최고치를 갱신하는 물가를 잡기에 역부족이었다. 시장을 다녀온 대통령 부인 김윤옥씨가 배추가 한 포기에 1만 원이 넘었다고 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배추김치 대신 양배추 김치를 올리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배추 한 포기 1만 원'의 주범은 날씨나 농민·거래상이 아니었다. 이명박 정권 집권 초기부터 줄기차게 시행한 고환율 정책과 2.00% 저금리의 결과물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팀은 '지금은 저물가 시대'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저물가가 저성장의 요인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의 물가는 이명박 정부에서 천정부지로 올랐던 물가가 국제유가와 환율, 소비 여력의 악화라는 요인 때문에 주춤하는 것일 뿐 저물가로 볼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체감 물가는 상대적이다. 서민들의 소비 여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1% 물가 성장률이 저성장 늪에 빠질 수 있다는 논리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배춧값 한 포기 1만 원 시대가 그리운가? 그렇게 되면 경기가 되살아나고 서민들 밥상에도 웃음꽃이 필까?
더구나 기준금리 인하는 누가 뭐래도 부동산 띄우기다. 또 환율을 자극하고 주가를 끌어 올리려는 정부 정책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박근혜 임기 초부터 집값을 올려 소비를 촉진하고 경기를 회복하겠다는 정책은 전셋값 폭등이라는 부작용만 키울 뿐 소비 촉진, 경기 회복과는 오히려 더 멀어지고 있다. 또 기준금리 인하와 환율 인상, 주가 인상은 수출대기업에게 어느 정도의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성장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빈부의 격차만 키운다는 것이 이명박 정권 하에서 숱하게 검증된 결과다.
가계부채가 1천 조를 넘어섰고 내년엔 1100조를 바라볼 것이라 예상된다. 2007년 665조 원이었던 가계부채가 7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빚 권하는 정책과 저임금 노동정책이 빚어낸 결과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서민에게 내민 대책의 상당수는 대출 완화였다.
이한구 의원 말처럼, 이러다간 큰일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