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의 내 모습.
박주초
그 날 저녁,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온 어머니를 철없는 아들은 끊임없이 졸랐다.
"한 번만 해죠!" "엄마, 바쁜데, 그날도 일 나가야 돼." "이번만 해주면, 다시는 부탁 안할 게!"그동안 자식이 원하는 걸 해주지 못한 미안함, 그것이 마음에 남아 있었기 때문일까 어머니는 고민 끝에 알았다고 하셨다. 당시 뛸 듯이 기뻐 소리를 질렀지만, 그 때의 기뻐한 만큼 어머니께 미안하고 감사하다.
생일날이 되었다. 친구들에게 2시간 정도 후에 오라하고 서둘러 집으로 달려갔다. 한창 음식 준비 중일 어머니를 생각하며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집 안은 생각보다 너무 조용했다. 어머니는 계시지 않았다.
"엄마! 어딨어?" 어머니를 찾으며 두리번거리는 데 거실 탁자 위에 쪽지 한 장과 1,000원짜리 지폐 두 장이 놓여있었다.
'아들 미안해. 이걸로 친구들이랑 떡볶이 사먹어.' 후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학교에 있는 사이 아버지의 사촌뻘 되시는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은 장례식장에 급히 가신 거였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모르는 어린 초등학생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곧 있으면 친구들이 몰려온다. 물론 당시 2천원이면 친구들이랑 같이 분식점에서 먹을 수 있는 돈이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생일잔치로 초대를 했고 나만큼이나 친구들도 기대하고 있었다.
'2000원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 어린 초등학생의 머릿속에는 당시 인기 있었던 외화시리즈 '맥가이버'의 주제 음악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 속에는 명절에 먹고 남은 음식이 있었다. 우리 집은 큰집이라 항상 명절 음식을 넉넉하게 만들었고 가짓수도 많았다.
'잡채, 전, 오징어 튀김, 고기 산적... 음...'냉장고를 확인 한 후 슈퍼로 달려가. 라면 몇 봉지와 소고기 스프, 어묵, 카레 가루와 기본 양파, 감자, 당근, 파 등 기본 채소를 조금 샀다. 당시 집 앞 슈퍼마켓에서는 라면 한 봉지에 90원, 100원 하던 시절이다. 그렇게 2000원으로 재료를 사고 집으로 돌아와 요리를 시작했다.
채소를 잘라 기름에 볶고 카레 가루를 물에 풀어 끓이고, 한 쪽에서는 전과 오징어 튀김을 기름에 살짝 데웠다. 그리고 전과 오징어 튀김 위에 만들어진 카레를 부어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산적과 잡채를 데우며, 한 쪽에서는 김치와 라면, 어묵 그리고 햄 전을 넣어 부대찌개를 끓였다. 그리고 마지막 소고기 스프까지 끓여 놓았다. 잔칫상이 하나씩 채워져 가더니 어느 덧 꽉 찼다. 부대찌개를 두 곳에 나누어 상에 두고 그 옆으로 잡채와 카레 소스를 뿌린 전, 오징어 튀김이 위치했다. 짭조름한 고기 산적도 상 한 켠을 당당히 차지했다. 그리고 배추김치와 총각김치를 썰어서 채웠다. 마지막으로 스프와 밥을 떠서 아이들 수만큼 자리에 놓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니 네 엄마 어디 가셨어?""급한 일 있으셔서 음식 해 주시고 가셨어." 잔칫상을 준비했던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일까? 그 후 친구들이랑 어떻게 생일날을 보냈는지 이젠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은 케이크가 없는 것을 아쉬워하던 친구에게 '내가 케이크를 별로 안 좋아해'하고 둘러댔던 정도이다.
그때로부터 25년 정도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분식점에서 라면 한 그릇 먹어도 2000원으로 부족하다. 세상은 참 많이도 변했는데, 그렇다고 살기 더 좋아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곧 돌아오는 어머니 생신 때 '좋은 옷이라도 한 벌 사드려야겠다' 생각이 드는 10월의 어느 한가로운 오후, 단돈 2000원으로 셀프생일잔치를 벌였던 그날을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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