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 미제라블> 속 판틴. 아이의 양육비를 벌기 위해 성매매를 하고 난 뒤 자신의 무너진 삶을 처절하게 노래하는 장면. 성매매여성을 과연 자발, 비자발로 나누어 처벌할 수 있을까.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그렇게 10년 이상을 보낸 뒤, 이제 성매매여성이라는 이름이 내 것이 아니게 된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나는 그때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던 환경을 돌아보게 됐다.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 그 속에서의 선택은 온전한 게 아니었다.
어리고 세상에 무지하고 두려움이 많은 아이가 갈 곳이 없어 선택한 업소는 세상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유일한 곳이었다. 그 곳에서 손님들을 받으며, 그들이 설사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행위를 요구한다 해도 하기 싫은, 하고 싶지 않은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이 신경쓰이기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저 사람은 이미 나에게 돈을 지불했고 저 요구 상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나는 돈을 벌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먼저였던 것이다.
돈을 지불한 만큼, 손님인 남자가 나에게 행할 수 있는 요구사항에는 처음부터 어떤 '선'이라는 게 없다. 돈을 받으려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다 해야 한다. 그래야 끝이 나니까. 이 두려움과 불안 사이에서 나는 벌거벗은 채 코너에 몰려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꼭 피가 난무해야 폭력이 아니다. 스스로 두려움을 느끼고 공포를 느끼는 매순간이 폭력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포를 던져버릴 수가 없다. 생계라는 또 다른 공포가 이미 나를 가두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가 온전한 선택을 할 수 없게끔 말이다.
연예인처럼 화장을 해야 하고, 비싸고 화려한 옷을 입고, 늘 다이어트에 시달리며, 그 앞에 앉아있는 나는 이미 온전하게 한 인간으로 비춰지지 않는다. 나를 앞에 놓고 물건 값처럼 가격이 매겨지고 때로는 할인을 당한다. 도대체가 기준을 알 수 없는 서비스도 요구 당하며, 오늘 만족스럽지 않으면 다음에 더 잘해줘야 한다는 애프터서비스도 요구 받는다. 나는 그저 하나의 상품이 될 뿐이다. 돈을 지불하는 그 순간, 내 주인은 손님이 되는 그 세계가 서서히 익숙해지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폭력은 단칼에 피가 나는 폭력이 아니다. 그 현실에 젖어들고 익숙해져 나를 잃어버리는 것, 내 스스로가 나에게 벌어지는 현실에 분노하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 그로 인해 돈으로 한 인간을 소유할 수 있다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폭력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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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는 전국 12개 지역 반성매매운동을 위한 여성인권단체들의 연대체입니다. 여성과 약자에 대한 착취에 반대하고 성매매여성의 비범죄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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