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5백만을 위한 예술(Art for 25 million)'이라는 제목이 붙은 1984년 11월 28일부터 12월 9일까지 베를린 '다아트갤러리(DAADgalerie)'에서 열린 백남준 특별전 초대용 포스터 ⓒ DAADgal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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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1984년 1월 1일 뉴욕(정오), 샌프란시스코(오후 3시), 파리(오후 6시)를 동시에 연결해 한국, 일본,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등 11개국에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생중계로 송출했다. 이는 세계미술사에서 유래가 없는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이 최초의 위성오페라 쇼로 백남준은 명실 공히 세계적 작가로 자리를 굳혔다.
이 프로젝트는 뉴욕에 있는 '공영방송(PBS/WNET)'이 주관했는데 당시 방송제작자 중 누구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 거라 긴장했고, 뉴욕과 파리의 위성을 잇는 데는 문제가 없었으나 화면이 자주 끊겨 환희와 실망이 교차했다. 하지만 그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시청률이 초반에는 7%까지 올라가는 등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위성 쇼는 뉴욕의 사회자인 플림튼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 당신을 만날 시간이네요. [...] '빅 브라더(Big Brother)'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지 않아요, 하지만 TV는 우리의 뇌를 먹지요, 하지만 조지, 당신은 오버했던 것 같아요, 어떤 것은 아직도 남아있어요, 봐요, 당신은 좀 틀렸군요"라는 멘트로 시작한다.
이 작품명은 영국의 민주사회주의자인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이 1946년부터 2년간 쓴 소설제목에서 차용한 것인데, 이 내용은 1984년에 되면 '빅 브라더(Big Brother 가상의 독재자)'가 나타나 '텔레스크린'을 통해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암울한 '디스토피아' 세상이 온다는 내용을 담겨있다.
그러나 백남준은 오웰의 생각이 반만 맞았다며 그의 '빅 브라더'론을 조롱했다. 하긴 오웰의 예측이 다 틀린 건 아니다. 요즘 우리나라가 그런 형편이다. 하지만 백남준은 '첨단미디어기술'이 개발되면 전 세계가 하나로 통하는 쌍방소통이 가능할 거로 낙관했다. 그러나 오웰은 '인터넷-SNS시대'가 오리라고 전혀 예상 못했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왜 생방송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