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찬하는 남·북 고위대표단2014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차 방남한 북한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4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영빈관에서 김관진 국방안보실장, 류길재 통일부 장관 등 우리 측 관계자들과 식사하기 전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남북 외교 경쟁이 인권 문제에 미치는 영향지난 9월 말, 뉴욕에서 열렸던 제69차 유엔 총회에서 남북한의 외교경쟁이 재연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월 24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포문을 열었다. 박 대통령은 연설에서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상기하며 유엔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와 북한인권사무소의 한국 설치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북한이 흡수통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독일 통일도 언급했다.
연설 하루 전인 지난 9월 23일 뉴욕에서는 한·미·일 3국 외무장관이 주도한 '북한인권고위급회의'도 열었다. 북한은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거부당했다. 박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 직후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국방위원회 등 관련 기구와 관영언론을 동원해 박 대통령과 우리 정부를 비난했다.
박 대통령의 연설에 맞서 북한의 리수용 외무상은 9월 27일 총회 연설에서 핵개발을 "평화와 안전의 문제이기 이전에 한 회원국의 생존권과 자주권 문제"라며 "그 무엇과 바꿀 흥정물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국가안보를 인권보다 우위에 두고 핵개발을 인권과 연계시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변화이기도 하다. 유엔은 미국의 조종 하에 있는 기구라고 애써 폄하해온 북한이 15년 만에 유엔 총회에 외무상을 파견했다. 리 외무상은 "인권문제를 특정한 국가의 제도 전복에 도용하려는 온갖 시도와 행위에 반대한다"라고 주장하면서도 "우리를 적대시하지 않는 나라들과 인권 대화와 협력을 해나갈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유엔 총회에서 '인권 대화'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리 외무상의 뉴욕 방문을 앞두고 북한은 인권문제에 대해 많은 준비를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9월 13일 북한은 최초의 인권백서라 할 수 있는 <조선인권연구협회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북한의 인권보장제도-인권실태-인권정책-제약요소-인권개선 전망 등의 순서로 구성된 상당한 분량의 보고서다.
비록 대부분 북한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수준이지만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 리 외무상이 언급한 것처럼 인권 대화 관련 수용 입장과 그 조건에 관한 부분이다. 북한은 2000년대 초 유럽연합과 정치와 인권에 대해 대화를 진행한 전력이 있다. 그러나 2003년부터 유럽연합이 유엔 북한 인권 결의 채택을 주도하자 대화를 중단했다. 북한은 보고서에서 그 전례를 거론하며 다음과 같이 인권 대화에 대한 기본 입장을 밝혔다.
"우리는 인권대화를 반대한 적이 없다...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인권대화를 다른 나라들의 자주권을 유린하고 내정에 간섭하기 위한 도구로, 정권교체를 위한 범죄행위에 '합법'의 외피를 씌우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이다."유엔 총회에서 박 대통령의 북한인권 언급 이후 남북 간 상호 비방이 있었다. 그러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최측근 인사 3명이 남한을 전격 방문해 남북관계 개선 의사를 천명했다. 북한의 이런 행보가 무엇을 뜻하는지 진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국제관계에서 인권문제, 특히 적대관계에 있는 당사자들 사이의 인권문제는 실제와 명분, 목적과 도구의 양 측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박 대통령이 유엔에서 북한 인권을 언급한 것도 북한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실제(목적)의 측면과 향후 남북 대화에서 협상의 우위를 점하려는 명분(도구)의 측면이 동시에 반영돼 있다. 우리의 인권 문제 언급에 북한이 격렬하게 반응하면서도 남북 대화 의지를 표명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 두 측면을 분리해서 대응하며 남북 대화를 복원하려는 전략이다. 실리 추구에 주력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남북관계에서 인권문제가 주요 의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사실은 큰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