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지난 9월 30일 오후 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을 발표한뒤 회담장을 나서고 있다.
남소연
- 현재 야당을 보면 희망이 있을까 의문도 들어요."새정치민주연합은 정치적 지지기반을 확대하기 위해서 외연 확장이라는 전략을 쓰려고 했습니다.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정당으로의 모습을 갖추면 자연스럽게 외연확장은 이뤄지는 거죠. 이걸 놓치면 외연 확장론은 물론 자기 정체성도 잃고 중심도 무너지는 파국을 가져옵니다.
정치는 현실에서 가능한 것을 토대로 변화를 이끌어나가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까지 상상해서 그것이 현실 정치를 이끌고 가는 지표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현실에서 당장 빈부격차를 줄일 수 있다거나 분단을 단시간에 해소할 방안이 나온다거나 하는 건 아니죠. 그렇다고 이러한 이상과 목표를 포기하면 안 되지요. 목표를 분명하게 세워서, 그것을 이루기 위한 절차와 정책 등이 하나씩 만들어지는 게 중요합니다.
교육도 정치가 교육의 범위와 내용까지 규정하는 막강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도 교육은 겉으로는 정치적 중립을 내세우면서 기득권의 논리를 그 안에 담아내려고 기를 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리에 문제제기를 하거나 반론을 펴면, 불온시하고 정치적 편향성이 있다고 몰아갑니다. 정작 정치적 편향을 내재화하려는 것은 제도교육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쪽인데 말이죠.
이런 것을 막지 못하면, 문제제기할 수 있는 능력도 갖지 못하게 되고 역사의 진실에 대한 비판적 이해력도 파괴됩니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는 만큼 특권과 기득권이 작동할 것이고 그런 만큼 보통의 사람들은 고통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정면에서 거론하고 본질에 대한 사회적 사고를 하도록 만드는 야당의 이론과 실천이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 새정치민주연합은 이상돈 교수 영입 문제로 내홍을 겪었는데 어떻게 보셨어요?"이 사건은 야당의 정체성에 중대한 질문을 던진 사건입니다. 외부에서 새로운 힘을 받아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이는 당의 가치나 정체성과 직결되는 문제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인물을 영입하는 것이 옳죠.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상돈 교수 영입에 대한 내부의 저항이 당연했습니다. 그런 걸 내부 설득의 문제로 본 것도 옳지 않아요.
원칙적으로 잘못된 선택입니다. 이상돈 교수가 보수권에서도 존경받고 일정하게 합리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졌기에 그랬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합리적 보수도 야당의 지지 세력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외연 확장론의 계산이 작동한 결과지요. 그러나 이 교수는 기본적으로 박근혜 정권을 등장 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어요. 이후엔 비판도 하고 있기는 하니까요.
그러나 박근혜 정권의 등장으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고 있나요? 그런 정권을 등장 시킨 자신의 과오부터 반성하고, 자신이 왜 이런 현실을 미리 내다보지 못했는지에 대해 정리하는 과정이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런 토대 위에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저런 것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 옳지요. 그랬다면 아마도 존경 받았을 것이고 내부의 반발도 상당 부분 정리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모두에게 정치적 재앙이 되고 만 겁니다. 어떤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지, 그것부터 확실히 했으면 좋겠어요."
- 박영선 전 원내대표의 행보는 어떻게 보세요?"박 원내대표는 아까운 인물입니다. 본인도 억울한 점이 있었을 것이고 그러면서 스스로 비판적 성찰도 했을 것으로 봅니다. 두 번이나 패착한 세월호 특별법 협상 파동 이후 그녀의 사퇴는 이미 예견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물러나고 말았지만, 물러날 때의 메시지가 '뒤끝'이 있더군요. 깔끔하지 못했어요. 사과도 했지요? 그러면 그냥 '제 능력이 부족해서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하고 자신이 온통 책임을 지고 가야 하는데, 내부 비난을 남겼어요.
큰 정치인이 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점을 스스로 드러내고 만 겁니다. 남 끌고 들어가는 식이 된 거니까요. 비상대책위를 책임지면서 '독배를 마시는 격'이라고 했는데, 그러한 각오로 처음부터 끝까지 임했다면 투쟁력 포기나 수사권, 기소권 포기 등의 협상 전략은 애초부터 발상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미 물러난 상태에서 다시 비판하고 싶지는 않고요. 이번 일을 깊이 돌아보고 새로운 출발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박영선 의원만한 사람 하나 생겨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현재 진보정당들은 거의 존재감이 없어 보이고 심지어 진보정치의 위기라고도 하는데 어떻게 보세요?"진보정당은 기본적으로 진보정치 통합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스스로 갖지 못했고, 특히 통합진보당에 있어서는 비례대표 등 여러 논란들을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자기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없는 진보세력에게 정치적 신뢰를 줄 국민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지금 진보정당들의 존재감이 없다 할지라도 바로 이런 상태가 있기 때문에 진보정치 세력들이 많은 고민을 하면서 새로운 방향을 찾으려 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한 역사가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과정인 거 같아요. 한 마디 덧붙이자면, 진보정치 없는 정치발전은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진보정치의 성장과 함께 이루어져갑니다. 서민들의 정치적 기본권, 경제적 안정을 가장 집요하게 추구하는 세력이 바로 진보정치이기 때문입니다."
- 강준만 교수의 '싸가지 진보론'과 같은 얘기일 수도 있는데, 진보는 도덕적 우월감이랄까요, 왠지 교만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그래서 진보에 거부감이 들 때도 있던데 어떻게 보세요?"진보세력에게 일정하게 경고가 되고 귀담아 들을 부분이 있다고 봐요. 진보가 진보답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는 쪽으로 논의가 가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정치 세력도 도덕적 우월감에 따른 오만이나 교만을 떨어서는 안 되지요.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인간, 사회, 정치, 자본, 국제정세의 문제를 깊게 짚고 들어가서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지속적으로 내놓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해결이라는 것은 당장 현실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일지 몰라도 이런 과정이 축적되어 가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고 변화가 가능해지는 겁니다. 진보가 진보임을 포기한 채 감성에 영합해서 자기 정책을 숨긴다거나 그걸 통해서 뭔가를 적당히 타협적으로 주물러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자체가 이미 자기 정체성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일이 될 것으로 봐요.
이것이야말로 '싸가지 없는 진보'의 본질입니다. 타협이 무의미하다거나 필요하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정치적 타협의 능력도 매우 중요합니다. 문제는 과격이나 극단으로 보이게 될까봐 본질적 논의는 피하면서 하는 타협입니다. 이건 진보의 정체성을 스스로 해체시키는 과정이 될 겁니다."
"민주주의 파손되면 우리 미래도 무너진다"
- 세월호 특별법 문제는 여야가 일단 협상타결을 했습니다. 어떻게 보세요? "사고가 생겼을 때 이를 풀어나갈 수 있는 국가적인 역량이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데 그 역량의 작동이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사건 발생 시 대통령의 행동반경과 움직임을 문제 삼는 것은 '박근혜'란 한 개인의 사적 동선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헌법 기구의 작동에 대한 국민적 질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을 국민 모두가 보았지요. 이 헌법기구의 오작동을 철저히 검증하는 과정 없이는 사고의 원인도 모르게 되고 진단도 할 수 없게 됩니다. 향후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 당했을 때 거기에 대응도 제대로 못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유가족이 요구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은 당연한 국민적 기본권입니다.
조사의 독립성과 법적 강제성을 보장해 주지 않으면 권력에 의해 이 문제가 은폐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럴 경우 또 다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세월호 유가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매우 중요한 사안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나요?
여야 3차 협상의 내용은 이러한 접근을 봉쇄했습니다. 유가족들의 참여도 막았습니다. 청와대와 여당은 이런 식으로 세월호 문제를 끝내기 수순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왜냐면 세월호 법이 발동할 경우 그때부터가 진정한 진상규명의 시작이고, 적어도 1주기가 되는 과정까지 굉장히 많은 논의들을 피할 수가 없어요.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진상규명기구의 성립은 국민의 기본권입니다. 생명의 문제와 관련해서 양보를 요구하는 법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습니까? 자기들 목숨 걸린 일에도 그런 양보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