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다는 이유로 다들 잘 찍지 않는 풍경, 그래서 오히려 새롭게 다가온다.
원덕희
'대문 열어놓고 사는' 동네 사람들이 길을 걷고 밭을 매고 마당에 고추를 널어 말리거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들. 동네 돌담에는 능소화, 조롱박이 달려있고 가을 햇살을 받은 감나무의 감과 벼이삭이 황금빛으로 물든다. 수확해놓은 땀의 결실인 고구마, 호박이 탐스럽다. 시나브로 겨울이 오면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날 할머니가 툇마루에 앉아 지긋이 도회로 떠난 자식 생각에 잠긴다. 산골 동네에 같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찍을 수 없는 사진들이다.
'풍경 사진 잘 찍는 법', '여행사진 잘 찍는 법' 어느 유명 사진가의 블로그나 서점에 나오는 사진 관련 책의 제목들이다. 많은 사람이 사진 잘 찍는 법에만 관심이 있다. 촬영 기교와 편집 기술을 배워 '쨍한 사진'을 만드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물론 그것도 사진을 즐기기 위해 중요한 부분이지만, 사진을 오래오래 즐기며 향유하기 위해서는 다른 고민이 필요하다. 사진이란 무엇인지,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왜 사진을 찍고, 사진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등 기본적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진책은 안타깝게도 드물다.
전문 사진가가 특별한 기교 없이 담아낸, 숨을 쉬듯 자연스레 묻어나는 사진들을 감상하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점점 난해해져 가는 현대미술을 풍자와 해학을 담아 쉽게 표현한 조영남, 학자들이 복잡하고 골치 아프게 만들어 놓은 경제학을 이해하기 쉬운 '대중을 위한 경제학'으로 풀어쓴 학자 장하준, 학창시절 모두가 어려워하는 과학과목에 관련 인물과 에피소드를 넣어 흥미롭게 설명했던 옛날 물리 선생님 같은 분들이다.
마을 사진가, 동네 사진가, 생활 사진가가 되자"노동과 땀과 눈물이 들어간 삶의 터전은 마음에 안 들면 손 털고 쉽게 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더욱 사랑한다." (본문 중에서)사진은 관찰의 예술이다. 평범한 장소에서 평범하지 않은 것을 발견하는 데는 그곳에서 살고 있는 생활 사진가가 최고다. 저자처럼 생활하는 공간과 주변 사람들을 수년간 사진으로 담아내다 보면, 사진을 잘 찍는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들을 보는 우리의 시선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고가의 고급 카메라로 사진만 잘 찍으면 될 것 같지만 찍는 기술은 3개월이면 다 배운다. 하지만 내가 사는 동네와 사람들의 삶과 세상을 보는 눈, 안목 같은 건 사계절을 넘게 배워도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