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절둑거리며 모은 대추들수확의 풍성한 기쁨을 한없이 맛볼 수 있는 것이 대추나무다.
김도형
일하고 있다보니 어머니께서 다가와 어저께 있었던 얘기를 하며 속상해 하셨다. 믿고 지내던 지인에게 그다지 큰 액수는 아니지만 보증을 서줬는데 지인이 돈을 갚지 않고 어디론가 가버린 바람에 곤란한 상황이 되었고, 그 사실을 아버지께서 아시곤 호통을 치셨다고 한다.
쾌활한 어머니께서 조용히 얘기하시며 많이 속상해 하신 걸 보니 마음이 안스러웠다.
게다가 아버지께서도 얼마전에 테니스를 치시다가 발을 삐셨다는 얘기를 하셨다. 그제서야 아버지께서 왜그리 저기압이었고 앉아서 일하시는지 이해가 갔다. 희한한 일이었다. 아버지께서 발을 삔 뒤 나도 발을 삔 것이라서 혹시나 아들 경록이도 다치지 않을까 짐짓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제서야 어머니께 아버지처럼 나도 발목을 삐었노라고 말씀드리며 신기한 일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어머니는 다쳤는데 왜 올라왔냐며 걱정하며 말하셨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똑같이 다친 것을 생각해보니 우스운지 피식 웃음을 내보이셨다.
한참을 일한 뒤 아버지께 가보니 배가 고프시다며 어머니 불러서 점심 차리라고 하셨다. 저멀리 밤따러 간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밥차려 달라신다고 큰소리치며 어머니를 불렀다.
고기를 구우며 무뚝뚝하게 식사하시는 아버지를 곁눈질로 보았다. 다리가 불편하셔서 못내 언짢으실 거란 생각이 들어 기분을 풀어드리기 위해 이런 저런 얘기를 꺼냈고, 얼마전에 누나가 큰 공연무대에 나가서 새로운 노래를 불러 많은 관심을 받았다는 얘기를 전해드렸다.
얼굴 표정은 그다지 변화가 없으셨지만 그래도 누나 얘기에 솔깃해 하는 눈치셨다. 다행히 아버지 앞에서는 다리를 다쳐 절룩거리는 모습을 안 보여드려 야단은 맞지 않았고 조용히 넘어간 날이기도 했다.
올라간 이날 대추가 많이 열렸지만 아직은 색깔이 파란 대추가 많이 있어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수확을 해야만 했다. 일주일 뒤쯤에 어머니가 부르면 다시 올라가기로 했다. 부지런한 아버지께서 발을 다치신 관계로 이날 대추수확 작업은 미진했지만, 나 또한 삔 발목으로 인해 절룩거려 어차피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만약 아버지께서 욕심을 부려 대추나무를 함께 털었으면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다리를 절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될 뻔하기도 한 날이었다.
아버지께 한의원에 가서 꼭 침맞으라고 말씀드렸지만 완고한 아버지는 별다른 말씀이 없고 여전히 무뚝뚝하셨다. 어느정도 완쾌되셔서 대추나무를 털게 될 때쯤이면 다시금 얼굴이 환해질 거라 생각든다.
2년 전에 아버지께서는 수확한 대추를 한가득, 돗자리에 깔아놓고 흐믓한 모습으로 대추를 봉지에 한됫박씩 담아 여러 봉지를 만들어 주셨다. 봉지에 한되씩 담은 대추를 지인들에게 싼값에 팔라고 하시며, 모은 돈은 아들 경록이 통장에 용돈으로 넣으라며 근엄하고도 진지하게 말씀하시던 기억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