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의 한 부동산 중개소(자료사진).
김동환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 집주인과 나의 싸움에서 승리한 쪽은 나라고 여겼다.
기본적인 계약 조건은 이전 집들과 별다를 게 없었다. 다만 집주인이 내건 특약이 하나 더 있었다. 동물을 키우면 안 된다는 것. 이전의 세입자 생활에서도 항상 문제가 되었던 것은 내 반려동물인 고양이였다.
어떤 집주인은 1년 반 동안 고양이의 존재를 알지도 못하다가 부재중인 세입자를 위한 가스 점검 서비스를 핑계로 내 공간에 들어온 후(돌이켜보면 이것도 참 어이없는 일이다. 내가 없는 집에 집주인이라는 막강한 권리로 문을 따고 들어오다니 엄연한 주거 침입 아닌가) 나를 만날 때마다 '짐승 냄새'를 문제 삼았다. 결국 계약 기간이 끝나기를 기다려 서둘러 이사 할 수밖에 없었다.
공인중개사,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걸까항상 이사 시기가 되면 집도 집이지만 집주인이 반려동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최대의 고려사항이 됐다. 이번 계약 역시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행히도 공인중개사 아저씨가 내 편을 들어주는 것이 아닌가(물론 그 아저씨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빨리 계약을 성사해서 '복비'를 받는 것이 주 목적이었을 테지만).
그는 세입자가 동물을 키우는 것에는 반대한다기보다 동물이 집에 있음으로써 발생하는 민원과 피해가 있을 시에 책임을 묻는 것이 어떻겠냐는 조건을 제시했다. 물론 나 역시 이에 동의한다. 매번 이사 시 자발적으로 도배를 해주고 나왔던 나였다. 고양이 키우는 집은 이렇다 하는 편견을 없애고 싶었기 때문이다. 집주인의 동의 하에 집 계약을 성사하는 순간 난 나의 승리에 취해 있었다. 이제 눈치 보지 않고 고양이와 살 수 있겠구나.
"그럼, 집 매매도 잘 부탁드려요."이건 무슨 소리지?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내 집주인이 집을 팔겠다는 것 아닌가? 아직 계약서에 도장도 마르지 않은 바로 지금 말이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공인중개사와 집주인은 집 매매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 중이었고, 집이 팔릴 때까지 그 집을 놀릴 수는 없으니 빈집도 관리해 주고, 집을 보러 올 사람이 왔을 때 집을 보여주며, 게다가 매달 월세도 꼬박꼬박 내줄 존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새로운 계약이 이루어져도 새 집주인의 동의를 얻어, 계약기간 동안 이 집에 살 권리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항을 미리 알았더라면 난 이 계약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황이 생겨 집을 팔 결심을 할 사람에게 잘못을 물을 수는 없다. 어차피 모든 계약의 중간에는 공인중개사라는 '중개자'가 있고, 그들의 행동이 '공인'된 것이기에 우리는 일정의 금액을 지불하는 것 아닌가. 세입자는 공인중개사를 믿을 수밖에 없다. 집주인보다 약자인 세입자의 편이 되어줄 거라는 기대감과 더불어 다른 세입자보다 나를 더 챙겨주는 것 같은 달콤한 말로 마치 내가 특별대우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이 집을 보러 갔을 때 이런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어디 가도 이런 가격에 이렇게 조건 좋은 집 얻기 힘들어요. 내가 학생이 예전에 말했던 게 생각나서 아직 사이트에도 안 올리고 연락한 거야." 그들의 작당에 대한 '괘씸함'과 그렇게나 중요한 부분을 체크하지 않은 내 '부주의함'을 탓하며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이 집을 고르는 데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던 것을 생각해 결국 이사는 하기로 했다.
당신이 거래하는 '집'에는 '사람'이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