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광주인화학교사건해결과 사회복지사업법개정을 위한 도가니대책위' 소속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집회를 연 모습.
유성호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합니다."30일 오후 2시 4분, 재판장 강인철 부장판사가 이 말을 마치자마자 취재진은 하나둘 법정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일부 방청객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앞만 멀뚱멀뚱 쳐다보던 그들은 변호인석에 선 수화통역사의 설명을 보고서야 퇴장했다. 영화 <도가니>의 실제 무대인 장애인시설 '광주인화학교'의 피해자들을 지지하는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이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10부는 이날 인화학교 피해자 7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금 청구 소송을 전부 기각했다. 재판부는 일부 원고들의 경우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이 끝났고(소멸시효 완성), 다른 원고들은 성폭력범죄피해나 교육권침해를 당한 것 자체는 인정해도 그 책임을 대한민국에게 묻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오래전부터 인화학교 피해자들은 교사와 직원들로부터 성폭력 등의 피해를 입었다. 이 사실이 소설과 영화 <도가니>로 알려지면서 이들은 2012년에야 비로소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다. 대한민국과 광주광역시, 광주시 광산구 등이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이 있으니 총 4억 4500만 원을 배상하라는 것이었다. 이들은 2006년 국가인권위 조사로 인화학교의 문제점이 드러났지만 광주교육청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점도 따졌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들의 주장 가운데 어느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증거가 부족하거나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성폭력 피해·교육권 침해, 국가 책임 묻기엔 증거 부족""A씨의 경우 2004년 성폭력 범죄 피해, 이 부분은 좀… 증거가 부족하다. 그와 B씨의 2009년 성폭력 범죄 피해는, 저희들이 이제… 기록에 나온 증거들을 보건데…." 강인철 부장판사는 판결 이유를 설명하면서 난감한 듯 몇 차례 안경을 고쳐 썼다. '피고들의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대목에서도. 머리를 여러 번 긁적이기도 했다. 강 부장판사는 "두 사람의 피해는 또래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난 범죄라 (피고들의) 의무위반에 관해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성폭력 피해 부분은 전체적으로 증거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국가가 A씨의 후견인을 지정하지 않았고, 인화학교 관리감독을 소홀히 해 A씨와 B씨, C씨의 교육권이 침해됐으니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원고 쪽 주장 역시 기각됐다. 강 부장판사는 이마를 한 번 매만진 뒤 "후견인 부분은 손해에 관한 증거들이 없고, 교육권 침해는 교육부장관이나 교육감의 지도감독 소홀과 학교폭력 예방 과실 등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말했다.
원고들이 2011년에서야 이 사건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 판단을 받았으니 그때부터 국가배상청구권이 생겼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부 피해자들이 성폭력을 당한 시기는 1985년 또는 1991년, 2000년, 2002년, 2005년이다. 재판부는 이 부분에서 '국가배상청구권을 5년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소멸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따라갔다.
"전체적으로 선고하겠다."강 부장판사는 다시 한 번 안경을 고쳐 쓴 뒤 주문을 읽었다.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는 내용이었다.
"국가 의무 다 안 해서 사고 났는데... 항소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