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직 내놓으라는 <조선>, 2005년엔 왜 그랬나

[분석] 사학법개정 53일 장외투쟁 땐 한나라당 편들던 <조선일보>

등록 2014.09.29 13:10수정 2014.09.29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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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외투쟁 야당, 의원직 내놓아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는 새정치연합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고 있는 <조선일보> 9월 27일자 사설
"장외투쟁 야당, 의원직 내놓아야"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는 새정치연합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고 있는 <조선일보> 9월 27일자 사설 조선일보PDF

"문 위원장과 비대위가 또다시 당내 강경파에 휘둘려 30일 본회의마저 거부한다면 야당은 정말 구제(救濟) 불능이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야당이 이번 등원(登院) 약속조차 걷어차 버릴 생각이라면 의원직을 내놓고 해야 한다. 국민은 더 이상 일도 하지 않는 의원들에게 세비(歲費)를 주고 갖가지 특혜를 누리게 할 생각이 없다."
- <조선일보> 2014년 9월 27일, '野, 30일 본회의도 거부하면 모두 의원직 내놓아야' 중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을 향한 <조선일보>의 강경발언이 심상치 않다. 지난 27일 '野, 30일 본회의도 거부하면 모두 의원직 내놓아야' 제목의 사설을 보면 지금까지의 국회파행 책임이 야당에 있는 듯 보인다. 언론이 특정 정당 소속 국회의원에게 의원직 사퇴를 운운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지금의 국회파행 사태가 오로지 제1야당만 떠안아야 할 몫인가.

"만나자"는 야당 제안, 뿌리친 새누리당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국회는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여야합의가 계속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2회에 걸쳐 원내대표 합의에 이르렀지만 유가족에 의해 거부당했다. 유족들은 처음부터 '진상조사위원회'에 강력한 권한을 줄 것을 요구했다. 수사권·기소권이 그 핵심이다. 유족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통한 진실규명을 원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 누구도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이토록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지난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특별법을 만들 것도 제안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을 비롯해 여야의 입장에 이견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특별법이었다. 그러나 지난 7월 7일, 김기춘 비서실장이 국회에 출석해 4월 16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행방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박 대통령 7시간 미스터리'가 언급되면서 미묘하게 기류가 변하기 시작했다.

유가족의 '수사권∙기소권' 요구에 대해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이 나서서 "청와대도 막 조사하겠다는 거냐"고 말했다. 지난 9월 1일 발생한 일이었다. 특별법 협상에 임하는 여당의 본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표현이었다. 그날 이후로 특별법 협상은 단 한 발자국의 진전도 보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제1야당은 비대위원장 외부 영입 건을 두고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는 진전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새롭게 선출된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세월호 특별법을 풀 복안이 있다"며 자신 있는 표정을 지었다. 비슷한 시기, 세월호 유가족 측에서도 약간의 입장 변화가 감지된다는 기사가 나왔다. 여∙야 2차합의안의 큰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기술적으로 특별법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구상도 보도됐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만나주지 않는다. 협상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지난 28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게 회동을 제의했지만 김 대표가 거부했다. '협상'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9분만에 끝난 본회의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오랜 진통 끝에 국회는 개원했지만 달랑 9분만에 본회의는 막을 내렸다.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9월 27일 1면
9분만에 끝난 본회의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오랜 진통 끝에 국회는 개원했지만 달랑 9분만에 본회의는 막을 내렸다.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9월 27일 1면 조선일보PDF

이런 상황에서 <조선일보>는 제1야당을 향해서 무조건 오는 30일 등원하여 법안을 처리하라며 호통을 쳤다. '무노동 무임금' 개념을 언급하며 일하지 않는 의원에게 세비와 특혜를 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국회 공전이 오롯이 새정치의 문제만은 아닌데, 야당만을 표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신문, 과연 일관된 입장이었을까.


2005년 12월, <조선>을 통해 본 두달 동안의 박근혜 장외투쟁기

집권여당과 맞서야 하는 야당에게 장외투쟁은 선택카드 중 하나다. 지금 집권여당인 새누리당도 마찬가지였다. 대표적인 장외투쟁으로는 지난 2005년 12월 시작해 53일 동안 지속된 '사학법 투쟁'을 들 수 있다. 그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현 대통령인 박근혜 대표였다. 2005년 12월 9일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사학법 개정안을 강행처리했다. 사학법에 대한 일반 여론도 열린우리당에 우호적이었다.

그런데 박근혜 대표는 장외투쟁이라는 초강경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듬해인 2006년 2월 1일 국회가 정상화될 때까지 53일 동안 장외투쟁을 벌인 것이다. 정기국회 상황이었다. 정부 예산안을 심의하고 처리해야 하는 국회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그러나 박 대표는 장외투쟁을 선택했다. '친이' 성향의 이재오 신임 원내대표가 당시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와 국회정상화에 합의하지 않았더라면 박 대표의 장외투쟁은 더욱 길어졌을 것이다.

사학법 투쟁 당시, 한나라당 예산안 심의 거부 2005년 12월 9일 열린우리당이 '사학법'을 강행 통과시키자 장외투쟁을 벌였던 한나라당. 2006년 정부 예산안 심의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사학법 투쟁 당시, 한나라당 예산안 심의 거부2005년 12월 9일 열린우리당이 '사학법'을 강행 통과시키자 장외투쟁을 벌였던 한나라당. 2006년 정부 예산안 심의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조선일보PDF

한나라당은 두 달 동안 장외로 돌며 정부 예산안 심의를 하지 않았다. 이 시기 <조선일보>는 그 기간을 어떻게 기록했을까. 전혀 다른 신문을 보는 듯한 느낌까지 받는다.

당시 <조선일보> 지면에는 장외투쟁을 벌이며 국회를 보이콧했던 박 대표 및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사설이 실리지 않았다. 한나라당을 대상으로 한 의원직 사퇴, 세비 낭비 등을 운운하는 내용도 존재하지 않는다. 약 2개월의 기간 동안, 사립학교법과 관련해 18개의 사설과 칼럼을 게재했다. '한나라당 이제 사학법 대안도 함께 생각해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제외하면 모두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에 대한 비판 일색이었다.

"정부와 여당은 지금이라도 개정 사학법에 대한 대화의 장을 다시 열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교육 계엄령 선포하듯 전 사학에 관선 이사를 파견해 접수하는 교육 파국을 불러온다면 그 책임은 정부 여당이 질 수밖에 없다." - <조선일보> 2006년 1월 7일, '교육 戒嚴令이라도 선포할 건가' 중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제정신이 든다는 것인지, 이렇게 싸울 생각을 안 해 가지고서야 한낮에 길거리에서 맨몸으로 발가벗겨진다 해도 할 말이 있을 턱이 없다. 이래서 대한민국을 수호하려는 사람들, 특히 종교계와 사학인들은 이번 사학법 문제에 그들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과거 유신 시절에 독재에 항거하던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온몸을 던져서 싸웠다." - <조선일보> 2005년 12월 27일, '사학법, 자유민주세력의 시험대' 중

"이번 사학법 날치기는 시대 역행적 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시대정신의 무뇌아'가 아닌 이상 그런 것을 개혁이라며 밀어붙일 수는 없다. 전교조는 어떠한가? 그들은 이미 암적 존재가 되었다... 스스로 노동자라 칭하면서도 업무 평가를 받으라니까 교육의 특수성을 내세우며 거부하는 비겁함, 이상이 '참교육'을 표방하며 출범했던 전교조의 2005년 자화상이다." - <조선일보> 2005년 12월 15일, '전교조 대안을 만들자' 중

2014년과 2005년, 당시 제1야당의 장외투쟁을 기록한 <조선>의 변신이 눈부시다. 2005년에는 제1야당의 입장에서 노무현 정부를 날카롭게 비판하던 태도였다. 2014년에는 오히려 제1야당에게 의원직 사퇴, 세비 운운하면서 거세게 몰아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장외투쟁 비판사설 없음" 2005년 12월 9일부터 국회가 정상화된 2006년 2월 1일까지 한나라당은 장외투쟁을 벌였다.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의 사설, 칼럼에는 국회를 등진 제1야당에 대한 비판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장외투쟁 비판사설 없음"2005년 12월 9일부터 국회가 정상화된 2006년 2월 1일까지 한나라당은 장외투쟁을 벌였다.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의 사설, 칼럼에는 국회를 등진 제1야당에 대한 비판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지용민

미∙소 '핫라인' 언급하며 여야 대화 주장했던 <조선>

"열린우리당 김한길,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가 30일 북한산에 올라 국회를 1일부터 정상화하고 최대 쟁점인 사학법 재개정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여야는 이번 대표회담과 같은 자유로운 형식의 대화와 아울러 비공식적인 창구도 열어 놓아야 한다. 냉전시대 미소 간에도 핫라인이 이어져 있었는데, 여야가 달랑 공식정치에만 기대고 있다면 그것만큼 위험하고 각박한 정치도 없다." - <조선일보> 2006년 1월 31일, '여야 원내 대표회담 결실 맺어야' 중

박 대표가 장외투쟁을 벌이던 시기, <조선>은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 간에도 핫라인이 있었다면서 여당과 야당의 비공식 소통창구도 열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위험하고 각박한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그로부터 8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역시 제1야당이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다. 야당의 비대위원장이 여당 대표에게 회동을 제의했지만 거부당했다.

당시와 같은 논리라면 이 신문은 대화를 거부한 김무성 대표를 강도 높게 비판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야당에 의원직 사퇴를 운운하는 모습이 낯설다. 지난 27일자 사설처럼 국회공전에 대한 비판의 화살을 야당에만 돌린다면, 이제 야당도 이 신문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같은 제1야당의 장외투쟁에 대해 너무나 다른 입장을 보여 오지 않았는가.

여야의 대화를 중시했던 <조선일보>의 반응이 궁금하다.
#조선일보 #사학법 #세월호 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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