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진미륵고려전기시대 제작된 대형 석불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관촉사 석불.
곽동운
이제 거대 석불을 찾아 충남 지역으로 가보자. 다음으로 탐방할 곳은 충남 논산에 있는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이다. 관촉사 석불은 관촉사 경내에 자리 잡고 있다. 관촉사는 반야산이라는 야트막한 산 중턱에 위치해 있는데 그곳에 올라서면 가까이는 계백장군 혼이 살아있는 황산벌이 보이고, 멀리는 계룡산과 대둔산이 보인다.
그렇게 전망이 좋은 곳에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이 굽어보고 있던 것이다. 한편 관촉사 석불은 은진미륵이라고도 불린다. 원래 그 지역의 명칭이 '은진'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보물 제218호인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은 높이가 18m가 넘는 우리나라 최대의 석불이다. 크기가 크기인지라 제작하는 데 무려 36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최대이고 긴 세월 동안 제작된 터라, 관촉사 석불에도 흥미로운 설화가 스며 있었다. 어느 날 반야산에 큰 바위가 불쑥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에 고려 조정은 그 바위로 불상을 만들 것을 결정하고 당대 최고 고승이던 혜명 스님에게 그 일을 맡겼다. 고려 광종 19년(968)에 시작된 석불 건립은 목종 9년(1006)에 가서야 완성됐다. 석불 제작은 다리, 몸통, 머리 세 부분으로 나뉘어서 제작이 됐는데 각 부분이 다 완성된 후 큰 문제가 발생했다. 각 부분들이 엄청나게 크고 무거운 터라 인력으로는 도저히 석불을 세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혜명 스님의 고민은 깊어 갔다. 그러던 차에 스님은 아이들이 진흙 불상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거기서 힌트를 얻어 석불을 세웠다고 한다. 아이들도 다리, 몸통, 머리를 따로따로 제작하여 불상을 만들었는데 나중에 그것을 독특한 방법으로 합체를 했던 것이다. 먼저 다리를 세우고 그 주위를 모래로 채우고는 물을 뿌려 주위를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 뒤 비탈을 만들어 몸통을 굴려서 올렸다.
그렇게 모래비탈을 이용해서 진흙 석불을 장난감 로봇 만들 듯 3단으로 합체했다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모방했고, 결국 18m가 넘는 엄청난 규모의 석불이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이렇듯 은진 미륵불은 제작시기와 제작자가 명확한 석불이다.
관촉사 석불도 고려 전기시대 작품답게(?) 인체 비례가 맞지 않는다. 대신 신체 부위를 시원시원하게 표현하였다. 머리, 손, 발 등이 아주 굵직하게 표현되었다. 인체비율을 중시했던 석불들이 정교한 디테일을 강조했다면, 은진미륵은 선이 굵은 디테일로 표현됐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손가락, 발가락까지 시원시원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그런지, 관촉사 석불을 보고 있노라면 친근감이 밀려온다. 거대 석상에 압도된다기 보다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관촉사 일대도 예전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었다. 옛 삼남대로가 이곳을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은진미륵은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곳에 서 있었다. 액운을 막아주고 마을의 안녕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작은 사찰에 10미터가 넘는 큰 석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