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명동성당에서 열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창립4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300여 명의 신부와 신자, 시민들이 참여해 토론내용을 경청했다.
조정훈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우리사회 민주화의 변혁기마다 중심에 있었다. 1970년대부터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빈민운동 등 우리사회 민중운동이 조직화 하는 데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1974년 9월 23일 지학순 주교가 '유신헌법은 무효'라며 양심선언을 발표하고 체포돼 징역 15년을 선고받자 강원도 원주에서 개최된 성직자 세미나에 참석했던 300여 명의 사제가 이에 반발하며 결성했다.
정의구현제단은 1982년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과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은폐조작 폭로, 6·10항쟁에도 함께 했다. 최근에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에 함께 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사회 정의와 약자의 편에 항상 서왔던 정의구현사제단이 창립 40주년을 맞아 22일 오후 명동성당에서 심포지엄을 열고 사제단의 활동과 전망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를 가졌다.
학술대회는 정치민주화와 경제민주화, 인권, 남북관계, 사제단과 교회쇄신으로 나누어 발제와 토론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300여 명의 신부와 신도 등이 참석해 사제단의 40년을 지켜봤다.
성유보 학술대회 준비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사제단은 수난과 박해 속에서도 이 땅의 인권과 민주화와 민중생존권 운동에 헌신해 오셨다"며 "한국사회는 정의구현사제단과 천주교에 큰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민주화에 대한 발제에서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사회적 영성, 자기혁신, 공공성의 만남과 변화: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40주년과 한국민주주의'주제로 정의구현사제단의 창설의미와 역할에 대해 발표했다.
박 교수는 사제단의 창설의미를 '전체의 온전성을 회복한 건강성'이라며 "내가, 한국 천주교가 변화하지 않고 남과 한구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을 회개하고 인식해 내면화한 산물"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안중근과 사제단을 한국 천주교의 사회적 영성과 자기혁신, 공공성의 대표 사례로 들고 "안중근이 없었을 경우 한국의 천주교는 그 불의의 시대에 이 민족과 민중에게 어디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묻고 "사제단이 없었을 경우 독재와 억압, 광주의 비극에 대해 한국의 천주교는 인간구원과 위로, 회복과 치유를 위해 무엇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우는 자와 아파하는 자가 많은 사회는 병든 사회이고 무너진 공동체라며 사제단을 "반생명적, 반인간적, 반그리스도적 방향으로 달려가던 한국사회를 치료하는 방향전환의 책임과 소명을 실현하는 노력"으로 평가했다.
박 교수는 한국의 현실에서 사제단의 주요 역할과 기여로 ▲ 육체적 피난처와 정신적 성소 역할을 동시 수행 ▲ 지역과 도시, 농촌의 지역연대와 지역연합의 중심 역할 ▲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전국네트워크를 갖추고 (보이는) 감시의 네트워크와 (보이지 않는) 저항의 네트워크로 대치선을 형성하는 중심 역할 수행 ▲ 사제의 핍박받는 모습을 통해 영혼의 안식과 위안 제공 ▲ 민주화 운동에 대한 이념적 방어와 정화와 탈이념화의 선도역할 ▲ 국제연대와 결속 등을 들었다.
사제단의 한계에 대해서는 의제와 사안의 판별과 구별의 필요성, 기술과 사회의 진화에 따른 겸손의 필요성, 우리 곁에서 고난 받는 형제에 대한 사제단의 응답은 무엇인지, 한국 청년들의 고통스럽고 핍진한 정신적, 영적 이해의 지평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지를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