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린 쥐포처럼 나오는 고추가루...
정현순
첫 번째 고추는 8월 말께 빻았는데 그땐 고추가 덜 말라 방앗간에서 "이거 적으니깐 빻아주지, 많으면 못 한다"고 했다. 고추가 기계에서 빻아 나오는 것을 보니 덜 말라도 너무 덜 마른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치 눌린 쥐포처럼 나왔다.
지난 8월에는 뒤늦은 여름장마로 고추말리기가 쉽지 않았다. 선풍기에도 말려보고 건조기에 찌어내기도 해보았지만 햇볕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내가 아무리 부지런을 떨어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니 속수무책이었다.
그렇게 2~3일만 날씨가 더 안 좋았으면 다 버려야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햇볕이 하루 이틀 반짝였다. 그 틈에 이른 아침부터 아파트 안마당에 이틀을 널어 말리니 빻아도 될 것 같았다. 일기예보는 다음날에도 비가 또 온다기에 부지런히 손질을 해서 방앗간에 가지고 간 것이다.
가지고 가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은 걱정했던 내 생각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고추 집에서 판매하고 있던 고추나 내가 가지고 간 고추나 건조 상태는 비슷해보였지만 완전 다르다고 했다. 거기에 있는 고추는 완전히 마른 상태에서 습해진 것이고 내가 가지고 간 것은 처음부터 덜 마른 것이라고 했다.
하여 그렇게 빻은 고춧가루는 그늘에서 더 말려주거나 될 수 있으면 빨리 먹으라고 방앗간에서 가르쳐주기도 했다. 태양초 만들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남편이 열심히 농사지은 것을 잘 말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힘들다는 생각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고추를 내놓거나 들여놓은 것을 본 동네사람 중에 "재미있지요?"하며 묻기도 한다. "아니요 재미는요. 너무 힘들어요."하면 그는 "그렇지요 힘들지요? 사먹는 것이 싸게 먹는 겁니다."하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