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김제 지평선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모습이다.
서치식
- 엄청난 노력의 재활치료로 주변 사람들을 감동 시켰다. 어떤 노력과 각오로 재활을 했고 지금은 어느 정도로 호전됐나? "3년간 치열하게 병원치료를 받다보니 '재활은 과학이고 운동은 치료'임을 알게 됐다. 오랫동안 병원치료를 받으며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자가 재활'을 하기로 결심했다. 병원치료를 그만 둘 당시 '영구 2급 뇌병변 장애'로 판정받았는데, 당시 규정은 '평지에서 50m를 혼자 갈 수 없는 자'가 기준이었다. 자가 재활에 나서면서 나는 사소한 일에도 스스로를 엄하게 몰아가며 생활 속 재활을 시도했다. 팔굽혀펴기부터 시작해 벽을 보고 천 번씩 큰 절을 했다. 서서히 뛰는 단계까지 발전시켜 나갔다.
지난 2012년 처음으로 하프 마라톤대회 완주에 도전했다. 막바지 코스에서 비록 실패했으나 내게는 값진 경험이었다.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를 얻으면 그 순간부터 장애가 자신의 운명인양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는 살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내 몸으로 이른바 '완전한 재활'을 이뤄, 사고나 질병 이전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지금도 마라톤 하프코스 완주를 위해 도전 중이다. 그 목표를 가지고 요즘 매일 전주의 삼천천변을 달리고 있다."
2급 뇌병변 장애를 '자가 재활'로 극복하다- 공무원 시험 준비는 언제부터 하게 됐나, 주변의 만류는 없었나? "장애를 얻고 재활을 하면서도 초기에는 늘 신문사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추천으로 2007년 인터넷 신문 편집기자로 근무할 수 있었다. 소중한 경험이었고, 이를 계기로 내 체험을 알리며 다른 재활 환우들과 소통하기 위해 서툰 솜씨로 <오마이뉴스>에 글쓰기를 했다. (관련 기사 :
무섭고 외로웠던 8년간의 재활, 기적이 일어났다 등)
참혹했던 사고현장에서 2차 부상 없이 나를 구조한 119 구조사를 인터뷰했다. 그 때 내 생명을 살린 공직자, 그 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 그 무렵 2009년부터 공무원 시험에 연령제한이 폐지된다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귀하게 얻은 생명으로 공직자가 되어 사회와 국가에 보답하겠다는 생각으로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 근처의 시립도서관과 대학도서관에서 매일 공부에 전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