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 인상안 보고하는 최경환-문형표최경환 경제부총리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담뱃값 인상안을 비롯한 종합금연대책을 보고하고 있다.
남소연
최근 정부와 새누리당에 의해서 추진되는 각종 조세 법안들은 대부분 국민 건강, 민생 경제와 경제부양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담뱃세 2000원 인상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국민건강의 최대 위해 요인으로 지목되는 흡연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라며 한사코 증세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담뱃세 인상이나 조부모 교육비 1억 원 증여 비과세 법안에 숨겨진 의도는 모두 부자 감세이자 서민 증세의 일환일 뿐이다.
의도적으로 고환율 정책을 유지하며 물가를 폭등시키고 서민들의 쌈짓돈이 대기업 창고로 흘러가게 만든 게 이명박 정부 때의 일이다. 돈 있는 사람이 돈을 많이 써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낙수효과를 주창하면서 종부세와 법인세 인하를 단행한 것도 이명박 정부였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아예 부자들의 세금을 줄여서라도 경제부양에 나서야 한다고 강변하면서도, 서민들에겐 오히려 간접세의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다. 최근 상황만 놓고 봐도,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4일 '상속세 및 증여세·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법안에는 설립된 지 30년이 넘는 중소·중견기업의 대표가 자녀에게 가업을 상속할 때 1000억 원까지 세금을 면제해준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가업 상속공제 한도를 기존 500억 원에서 두 배로 늘린 것이다. 지난달엔 공제 대상 기업의 연매출 기준도 3000억 원에서 5000억 원으로 대폭 확대했다. 2012년 기준 48만여 개 중 매출규모 5000억 원이 넘는 689개 기업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혜택을 받는다.
정부는 법안을 입법예고할 때면 언제나 그랬듯 '원활한 가업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30년 이상 건실한 가업 운영으로 사회에 기여한 바가 큰 기업의 가업상속 재산에 대하여는 상속공제의 한도를 확대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국민들에게 의견을 제출하라고 공지했지만, 의견을 제출할 수 있었던 날은 토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하면 고작 이틀에 불과했다. 비난 여론을 피해 보자는 꼼수란 생각밖에 안 든다.
쏟아지는 부자감세... 그들만의 '의~리~' 한 번 끝내준다 세월호 정국과 야당의 혼란을 틈탄 정권과 여당의 '묻지마' 감세 정책은 경제 부양과 민생경제 회생이라는 미명하게 어떠한 논의나 의견 수렴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국민 건강권 수호,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미명 아래 서민들이 가장 큰 피해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간접세의 대폭 인상을 예고되고 있다. 앞에선 민생이 먼저라고 호들갑 떨면서, 옆으론 부자와 대기업에게 온갖 혜택을 몰아주는 이율배반의 경제 정책. 대체 언제까지 서민들의 희생을 강요할는지 끔찍하다.
정부가 내놓은 내년 예산 규모는 올해보다 20조 원 늘어난 376조 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6일 청와대 국무회의 자리에서 "경제 전반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 (예산을)최대한 확정적으로 편성했다"라며 "경기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더디고 가계·기업의 소비·투자 심리가 위축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 주장엔 동의할 수 없다. 이해도 되지 않는다. 기업의 상속세도 면제해주고 (아직 통과하진 않았지만)손자 교육비 명목의 1억 원 편법 상속까지 세금 면제를 해준다면 대체 정부 재정은 어디서 충당할 것인가.
이미 많은 언론들이 담뱃값 인상 다음 타깃이 '주세'가 될 것이라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물론 정부는 아직 구체적 계획을 밝히지 않았고, 공개적으론 거듭 부정하고 있지만, 이미 주세 인상을 부추기는 듯한 일들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은 지난 6월 17일 열린 한 간담회에서 "술에도 건강증진기금 부과를 고민해봐야 한다"라며 "가장 음주량이 많은 나라고 폐단도 많은데 음주에 너무 관대한 게 아닌가 싶다"라고 밝혔다. 9월 16일자 <코리아헤럴드>에 따르면 문창용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담배와 술 등에 대한 접근성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세율을) 올릴 필요성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는 주세 증세가, 어느 순간 갑자기 담뱃세 인상처럼 터져나올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신성한 납세의 의무, 과연 평등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