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산재병원 전경. 한국의 대학병원보다 좋은 시설과 넉넉한 의료진을 보았습니다. 산재보험 재정으로 운용되고 만족도도 매우 높습니다.
노동건강연대
꿈같은 이야기일까요? 2013년 제가 직접 방문했던 독일 베를린 산재병원 옥상엔, 헬기가 대기 중이었습니다. 권역별로 있다는 헬기는 산재환자들만을 위해 사용되었고, 하루에 서너 차례 운행했습니다.
헬기장에 올라갔을 때 마침 이륙 준비 중인 헬기를 볼 수 있었는데 건설현장에서 추락한 노동자를 데리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헬기 운전 노동자는 언제나 헬기에 앉아 출동 대기 상태로 있다고 합니다.
그 헬기는 급성심근경색, 뇌졸중, 혹은 추락 등 급하게 이송해야 할 상황에는 언제든 출동했고, 비용은 산재보험에서 지급됩니다. 산재를 입은 노동자가 내는 돈은 전혀 없답니다.
이런 제도를 우리도 만들 수 있을까요? 단순하게 앞에서 살펴본 사례들만 보더라도 단번에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한국의 산재보험 제도가 수준 이하라는 점입니다. 접근조차 힘든 상황. OECD에 가입한 선진국인데, 우리는 언제까지 유럽 국가의 제도들을 부러워만 해야 할까요?
너무 큰일이 많아 자꾸 잊게 되지만, 지난 대선의 최대 이슈는 복지였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대다수인 한국 땅에서 복지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일을 하다가 아플 때 제대로 쉬면서 마음 놓고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이미 일하는 모든 이들은 4대 보험료를 내고(회사에게 걷지만, 순수하게 회사가 내는 것인지 생각해보자)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산재보험 혜택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없습니다'(단호해서 죄송합니다).
그래서 불안한 국민들은 민간보험에 다시 가입하고, 입원시 일당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챙겨주는 보험을 선호하게 됩니다. 일을 하던 사람이 불가피하게 다치거나 아파서 일을 쉬게 되면 가장 걱정되는 게 생활비이기 때문이죠. 결국 국가에 보험료만 낼 뿐, 사보험에 돈을 더 내고 이용하고 있는 형국이 되어버렸습니다(산재보험제도 50년인 올해 근로복지공단의 누적 흑자는 9조 원에 달합니다). 반면 산업재해 신청이 없는 회사를 중심으로 산재보험료를 깎아주어, 주로 위험이 집중되는 중소영세하청 회사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산재보험제도 50년, 7년간의 싸움같은 건 없길사고를 제대로 수습하는 과정에서 더 큰 사고를 예방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은폐를 방조하는 정책이 아니라, 사고를 드러내고 용기있게 수습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더 이상의 참사를 피할 수 있습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산재보험 할인제도'를 발표했는데, 그 역시도 산재를 은폐하고 일 때문에 아프게 된 사람에게 죄책감을 덧씌우는 제도라 안타깝습니다(관련기사 :
"사람이 떨어져도 수건으로 피 닦고 일해요").
마지막으로, 이야기 하나. 몇 달 전, 산재보험 OX 퀴즈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문제가 되는 질문이 하나 있는데, 바로 '산재보험 신청서에 사업주 확인란이 있다'가 맞냐, 틀리냐는 것이었습니다. 정답은 O.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그건 몰랐다며 놀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현실에서 산재보험 신청서를 받아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느끼는 첫 번째 벽, 사업주의 확인 도장입니다.
우리 사회보장제도의 하나의 큰 축인 산재보험은 아직 사람들이 제대로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그런 것입니다. 산재신청제도에서 '사업주 날인'만 없어져도, 산재신청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아니던가요. 7년을 싸워오신 고 황유미씨의 아버님 황상기 어르신의 일을 계기로, 그리고 산재보험 50주년을 계기로, 산재보험이 노동자 가까이에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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