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등
김종길
그러다 1953년 11월 28일, 경남유격대 사령관인 이영회가 62명의 대원과 함께 천왕봉 동북방의 상봉골이라는 골짜기에서 전경 제5연대 수색대와 교전하던 중 이영회는 죽고 나머지 부대원들도 거의 전멸하게 된다. 경남유격대를 상징하던 이영회의 죽음과 함께 지리산 주변, 아니 남한 전역의 빨치산 편제부대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사실 이곳뿐만 아니라 영원사골, 백무동골, 칠선골, 벽송사골, 조개골, 대원사골, 중산리골, 거림골, 삼점골 등 지리산 일대가 모두 빨치산의 활동지였다.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맞아 죽고… 그들 빨치산의 운명은 5년여 만에 비극적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이 비극이 빨치산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그 반쪽인 경찰과 국군의 참담함도 마찬가지였다. 지리산에서 5년간 죽어간 이만 해도 수만 명이었다. 당시에는 서로 죽고 죽이는 적으로, 빨치산과 토벌대로 구분되었지만 결국 하나의 민족일 수밖에 없는 '불이(不二)'였다. 외팔이 대장으로 군경 토벌대를 놀라게 했던 유명한 빨치산 최태환은 이 비극이 결국 '불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최태환은 낙동강 전선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 인민군과 백마고지전투에서 쓰러진 국군이 결국은 둘이 아니라 하나였듯이, 그들에게 있어서 조국은 하나였다고 말했다.
▲석굴법당
김종길
원혼을 달래다그로부터 한참 후인 1960년대, 한 스님이 벽송사에 들어오게 된다. 청산에 파묻힐 요량으로 심산유곡의 수행처를 찾아 발길 닿는 대로 온 원응 스님이다. 벽송사에 들어온 원응 스님은 1970년대 초 어느 봄날 알 수 없는 기운에 이끌려 걸음을 멈추게 되는데 그곳이 지금의 서암정사이다. 원응 스님은 이곳에서 한국전쟁의 참화로 희생된 무수한 원혼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그 상처를 달래기 위해 1989년부터 10여 년에 걸쳐 불사를 했다.
오늘도 서암정사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특히 젊은 커플들이 많다. 예쁜 연못에 탄성을 지르고, 자연암벽의 불상 조각에 감탄하고, 굴법당에서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빌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온갖 추억에 젖는다. 그러나 까마득한 전설이 아닌 불과 반세기 전에 피로 얼룩졌던 비극이 이곳 골짜기에서 벌어졌다는 걸 아는 청춘들은 없는 듯하다. 그들과 같은 또래의 너무나 많은 청춘들이 이 산에서 죽어갔다는 사실을….
▲원응 스님
김종길
"옴(AUM)~ 옴(AUM)~ 옴(AUM)~"(예부터 인도인들은 종소리를 옴(AUM)이란 의성어로 인식해 왔다. 옴(A-U-M)이란 소리 속에는 우주의 창조와 보존, 파괴의 진리가 동시에 담겨져 있다고 봤다)무상한 삶의 진리를 일깨우는 종소리가 어둑어둑한 골짜기에 울려 퍼진다. 지리산 골골마다 서려 있는 비극의 혼을 달래는 것이리라. 사랑도 미움도 환희도 분노도 마침내 모든 것이 투명으로 돌아간 것이리라. 원한이랑 이곳에 묻어두고 영혼이나마 훨훨 극락에 올라 자유로우소서!
수많은 강물 만 갈래 시냇물, 바다에 가니 한 물맛이로다. 百千江河萬溪流 同歸大海一味水 삼라만상 온갖 모습이여, 고향에 돌아오니 본래 한 뿌리이니. 森羅萬象各別色 還鄕元來同根身 - 서암정사 입구 돌기둥에 적힌 시
▲노을
김종길
서암정사 |
서암정사는 사천왕문을 들어서서 배송대를 지나면 대웅전을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다. 대웅전은 2012년도에 완공했고 지하에는 원응 스님이 1985년부터 금니사경을 해온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금니사경전시관이 있다. 범종각이 있는 연못 일대는 이곳이 '지리산의 하늘정원'이라 불릴 정도로 공중에 뜬 연못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범종각에서 바라보는, 망망하게 아스라이 펼쳐진 지리산 골짜기로 넘어가는 일몰은 곧 화엄의 세계다.
이곳에서 눈여겨봐야 할 곳은 석굴법당이다. 원응 스님이 한국전쟁의 참화로 희생된 무수한 원혼들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1989년부터 10여 년에 걸쳐 불사를 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춘 곳이다. 석굴법당 안에는 아미타불을 위시한 보살상들이 불교의 이상세계를 상징하는 극락세계로 정교하게 장엄되어 있다. 암자의 가장 높은 곳에는 비로전이 있다. 비로자나불과 문수보살, 보현보살, 선재동자 등의 불보살을 모신 비로전은 극락정토와 화엄세계가 서로 조화로운 화엄정토의 도량을 구현했다.
이처럼 큰 불사를 조성한 데는 석공들의 노고가 많았다. 석굴법당의 아미타 본존불은 이승재 석공이 시작했고, 본존불 외에 석굴법당의 여러 부조는 홍덕회 석공이 조각했으며 맹갑옥 석공이 조역을 했다. 주산신과 독수성은 맹갑옥 석공이 바깥 돌을 치고 홍석희 석공이 세 조각(細彫刻)으로 마무리했다. 사천왕상과 비로전은 이종원 석공이 중심이 되어 완성했고 배송대는 이금원 석공이, 용왕단은 이인호 석공이 각각 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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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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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골짜기에서 죽고 죽이고... 종소리가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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