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 회원등이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단식농성장 앞에서 '도시락 나들이' 등 먹거리 집회를 예고한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한 남성이 피자를 먹고 있다.
이희훈
모두 평범하게 살아 온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 분신과도 같은 자식들이다. 그 생떼 같은 자식들이 눈 앞에서 수장당했다. 그저 지켜만 보았다.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분신을 발만 동동 구르며 바라만 봐야 했다. 어느 누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이들 앞에서 대통령과 정부는 세월호 참사가 "교통사고"라며 강변한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어떤 교통사고가 300명 넘는 목숨을 앗아가는가. 너무나 어처구니 없고 억울한 죽음들이다. '진실'을 철저하게 밝혀달라고 요구하는 일은 당연하지 않은가.
일베 회원들은 달랐다. 그들에게는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했나 보다. 세월호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사회 일각의 목소리가 그들에게서 나왔다. 광화문광장을 시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메시지도 있었다. 일베의 폭식투쟁은 '애국'과 '공익'으로 포장되었다.
'먹고사니즘'의 문제는 물론 중요하다. 애국과 공익이 없으면 국가 공동체는 허물어진다. 전제가 있다. '인간'이다. 사람을 잃어버린 '먹고사니즘'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눈물 흘리는 약자를 짓밟는 애국과 공익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언론에서는 일베의 폭식투쟁에 대한 분석을 부지런히 내놓고 있다. 이번 '폭식투쟁'이, 일베 회원들이 오프라인 공간에서 집단적으로 행동한 첫 번째 사례라는 점 때문인 듯하다.
<한겨레> 9월 9일 자 기사 '일베의 폭식투쟁 패륜과 야만 키운 건 보수의 침묵'을 보면, 일베 회원들이 보수세력의 암묵적인 지원 속에 스스로를 보수의 '대표'인 양 행세하려고 했다는 분석(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견해)이 있다. 일베가 반대파의 격렬한 비난 위험(?)을 무릅쓰고 오프라인에 진출했다는 점에서 일견 타당한 분석이다. 품격 잃은 폭식투쟁이나 일삼는 그들이 보수의 '대표' 행세를 해야 한다고 여길 만큼의 정치적인 수준이나 의식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긴 하지만 말이다.
무시할수록 과격해지는 일베들의 인정 욕구이 기사에서 눈길을 끄는 분석은 이번 폭식투쟁에 대한 정신의학적 접근이다. 일베의 폭식투쟁을, 대중의 긍정적 반응뿐만 아니라 부정적 반응까지 피학적으로 즐기려는 성향이 집단적으로 표출된 사례로 보는 관점(황준원 강원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이 그것이다. 일종의 '비뚤어진 인정 욕구론'이다.
이 분석이 맞다면 일베(의 폭식투쟁)에 대한 격렬한 비난과 비판은 일베 자신의 의도와 목적을 살려주는 일이 될 뿐이다. 폭식투쟁에 참여한 일베 회원들은, 반대자들의 격렬한 비판과 비난을 받으면서 스스로를 숭고한 도덕적 희생양으로 여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들 분석이 타당하다면 우리는 철저한 무시 전략으로 일베를 무력화하는 수밖에 없다. 실제 일베 현상을 우려하는 사람들 사이에 꽤 널리 퍼져 있는 '일베 박멸론' 중 하나다. 그러면 문제가 없을까.
있다. 무시 전략을 전면적으로 쓰면 쓸수록 일베의 도발 수위는 점점 더 격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에서 주요 키워드로 나온 '대표'니 '인정'이니 하는 말들에 유의하자. 적어도 이 논리에 따르면 일베 회원들에게 중요한 것은 세상(타인)의 '시선'이다. 어떤 시선인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시선을 위해서 일베가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다음> 카페 '너땜에졌어' 운영자 조아무개씨가 일베 회원들의 이번 폭식투쟁을 비판하기 위해 '개밥 퍼포먼스'를 벌였다고 한다. "(일베 회원들이) 피자와 치킨을 먹었는데 개는 닭뼈를 먹으면 죽기 때문에 사료를 먹어야 한다는 뜻"이라며 일베 회원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에 일침을 가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촌철살인 같은 퍼포먼스는 고소하다. 그런데 그것으로 '일베충'(일베 회원을 조롱삼아 부르는 속어)들이 순순히 그들의 '일침'을 받아들일까. 솔직히 그들이 어떤 악랄한 '퍼포먼스'를 또 들고 나와 세월호 유가족들의 가슴을 후빌지 걱정이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모욕죄'로 처벌하자고 해도 안타까운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