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냉동고 냄새가 좋아!'
이명주
업무 시작. 출근 시각은 토요일 오후 2시, 일요일 오전 10시. 온종일 늘어지기 쉬운 주말, 편안한 시간에 한적한 길을 걸어 출근하는 일도 좋았다. 근무지에 도착하면 넓고 깔끔한 매장 안을 한 번 점검하고, 계산대에 앉는다. 손님이 올 때까지 책을 읽거나 노래를 들으며 바깥 풍경을 보는 것 역시 좋았다.
그리고 사람들. 편의점에 오는 다양한 연령대, 직업, 성격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말 그대로 세상을 보는 것이었다.
바짝 여윈 몸에 늘어진 러닝셔츠를 입고 꼭 밤맛 나는 작은 빵 세 개와 소주 한 병을 사 가는 할아버지, 늘 2리터 생수와 막걸리 한 병씩을 사는 청년처럼 풍채 우람하고 목청 큰 할아버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 빵 두세 개와 우유 한 팩을 사는 근처 회사 경비로 일하는 할아버지 등등. 한날은 "왜 든든한 도시락 안 드시고?"라고 했더니 "미덥질 못해서"라고 말하며 웃었다.
근처에 항구가 있어 항만업체 직원들도 자주 왔다. 기름때 묻은 작업복 차림으로(우주복과도 비슷하다) 인스턴트 도시락과 음료수를 고르는 청년 둘. 점심 메뉴를 최종적으로 고를 때까지 주머니 속 지폐와 동전을 신경 썼다. 건장한 체격에 일까지 고되니 언뜻 봐도 성에 찰 양은 아니었다. 역시나 소시지와 아이스크림을 추가로 샀다.
좀 전까지 식비를 아끼려 증정품과 적립카드 등을 꼼꼼히 챙기던 청년이 뭔가 결심한 듯 "복권 한 장 주세요"라고 말했다. 동전으로 긁어 번호를 확인하면 금세 당첨 여부를 알 수 있는 복권이었다. 첫 번에 1천 원이 걸렸다. 그랬더니 다시 5장을 샀다. 음식을 고를 때와는 딴판이다. 그중에 또 1천 원 당첨권 한 장이 나왔다. 이번엔 10장을 샀다.
9장이 전부 꽝. 마지막 한 장을 긁기 전 청년은 손을 올려 기도를 했다. 그리고 앞에 있는 동료에게 물었다.
"15억 당첨되면 뭐하지?""난 이 길로 회사 나감" 제법 진지하고 긴장된 몇 초가 지나고……. 최후의 결과는 야속하게도 꽝! 두 사람이 허탈해하며 일어섰다. 그들이 가고 호기심이 생긴 나도 복권 한 장을 샀다. 5천 원 당첨권이었다. 괜스레 미안하지만 신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