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처로운 북한의 인질 외교, 어디까지 갈까?

[주장] 북한은 억류 미국인 즉각 석방하는 통큰 정치 보여야

등록 2014.09.09 16:33수정 2014.09.0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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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개 주로 구성된 미합중국, 이른바 우리가 미국이라고 부르는 나라이다. 필자처럼 이 광활한 미국 땅에서 조금(8년) 살다 보면 신기한 여러 가지를 발견하곤 한다. 그중 하나가 특히, 많은 도로 명이 사람 이름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이른바 루즈벨트 에비뉴(Ave)에서 링컨 스트리트(St)에 이르기까지 부지기수이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은 의외로 역사가 짧다 보니 미국을 위해 헌신한 정치인을 이렇게라도 높이 평가하려는 것이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을 위해 싸우는 군인이나 혹은 일반 시민이라 할지라도 타국에 억류되었거나 피해를 당했다면 이를 꼭 해결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보복을 반드시 가하겠다는 것이 이른바 미국의 '자국민 보호' 철학이다.

원래 미국의 역사를 곰곰이 따져보면 이들은 인디언 땅에 침략해(미국 입장에서는 개척일지 몰라도) 자신들의 집을 건설하고 방어도 스스로 책임지는 게 원칙이었다. 그래서 총기 보유 자체가 원래는 아주 자연스럽고 합법적인 것이었다. 이랬던 나라가 광범위하게 여러 주를 통합하면서 세력을 확대하고 미합중국이라는 거대 체제가 등장하면서 '국가'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이 어찌 보면 아이러니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유명한 말처럼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고 소리 높여 외칠 정도로 미국은 국민들의 애국심을 철저한 국가 체제 유지 철학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를 유지하고자 "국가는 반드시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정책을 펴 왔고 이 정신이 일정 부분 세계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하게 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철학은 때로는 과도한 가짜 영웅 만들기를 초래할 만큼 심각한 문제점도 노출시켜 왔다. 예를 들어 스스로 아프가니스탄 전쟁터에서 근무지를 이탈한 의혹을 받고 있는 보 버그달 상병을 구하기 위해 작전을 펴던 과정에서 여러 미국 장병들이 희생되는 피해를 보았지만, 결국 미국은 억류 중인 탈레반 최고위 인물들과 맞교환하여 빼내 오기도 했다. 아마 버그달이 전투 중 잡힌 인질이었고 그가 미국에 귀환했더라면 미국 사회와 언론은 몇 달간 최대의 영웅 만들기로 난리가 났을 것이다.

미국의 아킬레스건, '자국민 보호'... 얻을 게 없다

필자가 이 점을 서두에 언급한 것은 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 미국 철학이 어쩌면 미국 최대의 '아킬레스건'이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른바 이라크에서 세력을 급속히 확장하고 있는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 세력인 '이슬람국가(IS)'가 미국인 저널리스트 2명을 참수하는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미국의 이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고 말았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 IS가 전략과 전술이 부족한 집단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IS의 등장은 그만큼 미국의 이라크나 대중동 외교 정책이 실패했음을 반증하는 산물이다. 괜히 남의 땅에 들어가 후세인을 몰아내고 나름 친미적인 정권을 세웠지만, 이는 내실 있는 작업이 되지 못했다.

거의 돈으로 정권을 세우다 보니 이들의 군사 조직은 썩을 대로 부패해졌다. IS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인근에 접근할 때까지 이라크 정부군은 전투다운 전투 한 번 안 했다는 것이 이를 잘 증명한다. 지방 정부군 우두머리들은 도망가기에 바빴고 오히려 IS에 투항했으며 IS는 시쳇말로 그저 먹으면서 이라크 전역에서 세력을 확대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라크 철군 정책을 완료한 오바마 행정부는 사태가 이렇게 되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곧 이라크가 IS의 수중에 떨어질 만큼 급해졌으니, 오바마는 스스로의 외교 정책도 무산시키며 IS에 대한 공습을 감행한 것이다.

만일 IS가 국가 건설이라는 완벽한 전략과 전술이 있었다면 세력을 차지한 일정 부분에서 시간을 벌고 주민들의 지지를 더욱 강력하게 이끌어내는 전략을 펴야 했다. 그러나 쉽게 무너지는 이라크 정부군을 보고는 이들의 욕심이 앞서 나갔던 것이다.

IS는 이렇게 자기들이 미국으로부터 폭격을 당하자 미국민을 참수하는 강경책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것이며 IS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미국은 또 이라크에 발을 들이게 되어 한동안 IS를 향한 대규모 폭격과 제거 작전이 벌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IS는 번번한 대량 살상 무기 하나 가지고 있지 않던 후세인이 미국에 의해 제거되는 과정을 지켜봤을 것인데, '이슬람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세력이 미국에 대한 공부와 전략의 부재를 그대로 드러내고 만 것이다.

그런데 차원은 다르지만, 이렇게 '자국민 보호'라는 미국의 아킬레스건을 나름대로 잘 써먹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가 또 있다. 바로 북한이다. 북한은 자국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현재 3명의 미국인을 억류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3명이 지난 1일, 국제레슬링경기대회 취재차 평양을 방문 중인 CNN과 인터뷰를 했다. 다분히 미국 정부를 의식한 북한의 기획이었다. 각자 5분씩 주어진 이 인터뷰의 핵심은 한 마디로 바로 "나는 미국 시민이니 미국 정부가 나를 살려달라"는 것이었다.

'자국민 보호'를 최고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미국 대외 정책의 아킬레스건을 걸고 넘어지는 이러한 외교를 이른바 '인질 외교'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북한 입장에서는 이런 언급은 대단히 불쾌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무슨 IS처럼 미국민을 납치한 것도 아니고 엄연히 자국법을 위반해 법에 따라 처리하고 있을 뿐이라고 항변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많은 미국인들이 북한에서 국내법을 위반한 혐의로 억류되었지만, 이들은 지미 카터나 빌 클린턴 등 미국 고위급 특사의 방문으로 이른바 사면 조치를 받았다. 북한 입장에서는 사면이라는 시혜를 베푸는 것이라고 할지는 모르나 현실적으로는 엄연히 외교적 교섭인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60년을 넘게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지 못하고 북한을 정식으로 상대도 안 해주는 미국을 그나마 테이블에 끌어들이기 위해서도 이러한 전략이 필요할지 모른다. 현실적으로도 이는 여러 차례 통용되어 왔다.

핵보유 강국 자처하는 북한, 통큰 외교 정책 펴라

하지만 모양새가 참 우습다. 안 그래도 미국을 비롯한 온갖 서방 언론들은 북한을 독재자의 천국이자 인권이 전무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계속해서 억류된 미국 시민의 인터뷰를 의도적으로 방영한다면 중간 선거에 목이 메인 오바마가 할 수 없이 모든 수단을 써서 빼내 오기는 하겠지만, 과연 북한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60년을 넘게 이루어지지 않은 조미 수교가 이루어지고 정전 협정이 평화 체제로 전환되고 주한 미군이 철수할 수 있을까? 작게는 그 돌다리보다는 단단한 미국의 멍청한 '전략적 인내'라는 대북 정책을 조금이라고 바꿀 수 있을까?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된 핵무기를 개발하고 1만km가 넘는 장거리 로켓 기술을 보여주고 최근에는 더욱 고도화된 단거리 미사일 기술을 보여주어도 꼼짝도 안 하는 미국이다. 그러니 오죽 답답하면 미국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려 대화 창구로 나오라고 했을까. 이런 북한의 어떨 때는 같은 민족으로서 너무 안쓰럽기까지 하다.

권력은 유한하다. 오바마도 얼마 남지 않았으며 오히려 미국은 차기가 공화당으로 넘어갈 공산이 켜 한반도의 먹구름은 쉽사리 걷히지 않을 전망이다. 이 와중에 더욱더 미국의 강경 보수파들이나 네오콘들은 북한을 이상한 나라로 만들어 그들의 이익을 위한 전략을 고도로 펴고 있다.

오바마 정부가 특사를 파견해 예의(?)를 갖추고 억류된 미국인들을 빼내 온다 해도 북한은 서방이 만든 '야만적인 국가'라는 이미지를 크게 벗어날 수가 없다. 어쩌면 '인질 외교'라는, 북한이 불쾌하게 받아들이는 이미지만 고착화될 뿐이다.

그래서 북한이 이제는 고도의 전략을 쓰라고 제안하고 싶다. 어차피 하루아침에 북한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서방 여론을 바꾸지는 못한다.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함에 따라 이제 세상은 바뀌고 있다. 따라서 구차하게 인터뷰시키고 미국이 특사를 파견하기를 원한다는 이미지를 주지 말고 이참에 억류 미국인을 전원 석방하는 통큰 결단을 내리기를 바란다.

자국법을 중대하게 위반했지만, 북미 관계의 향후 발전적인 개선을 위해 아량을 베풀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돈으로도 사기 힘든 북한에 대한 이미지 회복일 것이다. 이참에 하나 더 제안하자면, 이미 다 기술 개발이 끝난 장거리 로켓을 추가 발사하여 중국도 난처하게 하고 미국의 군산복합체나 네오콘만 좋아할 일을 할 필요는 없다.

차라리 남조선(한국)에 인공위성 공동 발사를 제안하라고 권고하고 싶다. 북한은 장거리 로켓의 검증된 기술을 가지고 있고 우리 남한은 인공위성 기술은 있으나 로켓 발사체는 러시아 기술을 빌려 겨우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 말대로 세계 모든 나라가 인공위성을 발사하고 있는데, 물론 동전의 양면인 장거리 로켓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지만, 남한에 북한 서해 발사장에서 남한이 제작한 인공위성과 북한의 장거리 로켓 기술을 이용해 인공위성을 발사하고 남북이 공동으로 관리하자는 제안을 하기 바란다. 이 제안이 어떠한 이익을 가져다줄 것인지는 북한 당국이 곰곰이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거듭 핵무기도 보유한 강대국을 자처하는 북한이 구차하게 억류 미국인을 가지고 여러 생각을 하지 말고 과감하게 모두 석방하는 통큰 결단을 보여주기 바란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북한의 대미 정책과 관련하여 보다 고단수의 전략적 발상 전환이 이루어지게끔 조선로동당의 외교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고위급 관료들의 각성을 다시금 촉구하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진실의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질 외교 #자국민 보호 원칙 #북한 억류 미국인 #아킬레스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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