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는 시민 동반자로서 시민들이 놀 수 있는 '난장'(亂場)을 만들어야 한다"
이희훈
이 처장은 보수-진보의 진영화를 경계했다. 보수 정권 2기, 사회의 보수화 속에서도 진보와 보수 세력이 서로를 그 자제초 비난하거나 모욕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소통 여지를 없애고 사회 발전을 가로막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명박근혜' 정부 하에서 사회의 보수화보다 보수-진보 이념의 진영화에 맞서야 한다"라며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 진영 간 모욕과 비난을 자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20년간 시민들의 참여는 대폭 늘었다. 구경만 하던 시민들이 이제는 직접 피켓을 들었다. '참여형 시민'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잊지 않겠다'는 시민들의 행동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온라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을 통한 결집이 눈에 띈다.
이에 대해 이 처장은 "참여연대는 시민 동반자로서 시민들이 놀 수 있는 '난장'(亂場)을 만들어야 한다"라면서 "하지만 SNS를 통한 사회 참여가 폭발성이 크지만 휘발성도 강하다, 참여연대는 꾸준함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운동을 이끌어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창립 20주년을 맞아 분주하다. 참여연대는 최근 <감시자를 감시한다>는 이름의 책을 출간했다. 20년 활동과 조직을 분석하고 평가한 '참여연대를 위한, 참여연대의 보고서'다. 또 지난 1일에는 '참여연대 20년 도전과 성찰 그리고 새로운 모색'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기도 했다. 오는 15일에는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창립행사를 연다. '꿈꾸는 청년, 스무살 참여연대'라는 이름으로.
다음은 이태호 사무처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1987년 체제의 적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성장"- 참여연대에는 어떤 계기로 들어오게 됐나. "창립 멤버는 아니다. 참여연대가 1994년 9월에 만들어졌으니까 그 다음해 5월에 상근 간사로 들어왔다. 사실상 공채 1기 아니, 낙하산 1기다.(웃음) 창립 멤버는 1980년대부터 학생운동을 했거나 노동운동을 했던 분들이다. 나는 상대적으로 19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을 했고, 참여연대를 만든다는 것을 알고 함께 일하게 됐다."
- 20년 가까이 지내면서 기억에 남는 사업이 있다면. "처음으로 했던 일이 부패방지법 제정운동이다. 1995년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세월호 침몰사고처럼 큰 충격이었다. 또 그해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밝혀졌다. 그러면서 반부패 척결이 1990년대 중반의 화두였다.
반부패 운동의 연장에서 부패 인물을 정리하다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입각해서는 안 되는 부패 인사 100명을 발표했다. 그 작업을 바탕으로 한 것이 2000년 총선에서 낙천·낙선운동이다.
또 지난 2010년에는 천안함 침몰사고 관련 민군 합동조사단의 발표에 이의를 제기하는 항의서한을 유엔에 보냈다. 이에 보수 언론과 보수 단체가 '친북' '종북'으로 우리를 매도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할아버지들이 참여연대 앞에서 LPG 가스통을 들고 폭파시키겠다고 했다. 그렇게 큰 파장을 일으킬 줄 몰랐다. 유엔에 항의 서한을 보내는 것은 계속있던 일이다. 오히려 이 일로 회원 수가 2000명가량 늘어나기도 했다."
- '참여연대는 1987년 체제의 적자'라는 표현도 있다. 그만큼 1987년 이후 한국사회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해 참여연대가 나섰고 이를 잘 포착했다는 지적이다. "'1987년 체제'의 수혜를 받았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참여연대가 급성장했던 시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부패방지법 제정 운동했던 것도 부패가 심해서 돈이 어디로 다 새서 비용을 줄이자는 취지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는 경제를 제대로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외환위기가 왔다.
외환위기는 사회 체질을 바꿨다. 반부패, 복지, 재벌개혁이라는 화두가 국가 의제로 등장했다. 고용이 곧 복지를 보장한다고 했지만 비정규직 양산으로 복지는 제도로서 별도로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리고 재벌을 개혁해야 사회가 건전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참여연대는 이 세 가지를 주도해 나갔다. 재벌 개혁을 위해서는 소액주주운동과 부패방지법 제정, 복지 분야에서는 국민생활최저선 확보 운동, 노령 수당 지급 소송 등을 해나갔다."
"뿌리 깊은 보수-진보 진영화에 맞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