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윤상 전주경동교회 목사
이영광
- 광화문에 파송된 지 한 달이 지났는데요. 어떤가요. "이곳에서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요. 보통 '편안'할 걸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고통스럽고 어렵거나 고난이 있다고 하더라도 옳고 바른 길을 갈 때 사람들은 '평안'해 하거든요. 자기의 분노를 표출할 수 있고 그 분노가 그 사회 속에서 해소될 수 있을 때 평안을 느끼는데, 이곳이 평안을 느끼는 공간이 되는 것 같아요.
편안함은 물질이 많을 때 느끼게 됩니다. 좋은 집, 좋은 차, 기름지고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식, 폼 나는 옷차림 등 재력이 있어야 누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 세월호 농성장을 찾는 이들은 평안을 찾고 있어요. 자기 마음을 나누고 억울함을 털어 놓고 공감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보려고 하는 움직임들을 봤어요.
그런가 하면 사람들과 공감하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죠. 편안한 삶에 안주해서 사는 사람들, '세월호 이만하면 됐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경기 침체를 말하기도 하는데 세월호 때문에 경제가 나빠졌다면 우리나라 경제가 심각한 거예요. 세월호로 나라 경제가 어려워졌다면 교역량 세계 10위 안에 든다는 우리나라 경제는 무언가 심각한 상황이거나 아니면 본질은 세월호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본질을 흐리는 거죠."
- 세월호 농성장에는 자발적으로 오게 된 건가요. "지난 7월 23일, 기장 총회에서 진행하는 1일 동조 단식에 참여했다가 이튿 날 밤 전주로 내려가려는데 경찰이 유가족들을 막는 것을 보고 가슴은 아픈데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어요. 너무 나약한 저 자신을 봤고 '저분들 많이 아프겠다. 자식을 잃은 아픔이 있는데, 그걸 해결해 주지 못하고 고통을 주고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단순히 기도하는 것보다 아픈 그분들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곳에 목회자를 파송해서 이분들의 아픔을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제가 기장 전북노회 교회와사회 위원장인데 위원들이 30명 정도 됩니다. 그분들이 다 모이긴 어려워서 일일이 통화하고 임원회의를 소집해서 목회자를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 있는 유가족에게 파송하기로 결정했어요.
파송은 위원회의 결정이고 '아무래도 지금까지 개신교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이웃의 아픔을 나누지 못했기 때문에 위원장이 가는 게 좋겠다'고 해서 제가 자원해서 왔죠. 교회와 사회 위원회 결의를 기장 전북노회에서 추인하고, 이를 기장 총회가 추인해서 교단에서 공식적으로 파송하게 된거죠. 개척 교회를 준비하는 목사님께 교회를 부탁하고 왔습니다."
- 광화문에 가서 있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과 교회의 반응은 어땠나요?"흔쾌히 동의해 주셔서 왔어요. 2주 전에 임시 노회가 있어서 잠시 다녀왔는데 목사가 설교로만 하는 것보다 말씀을 실천하는 것을 보고 긍정적인 반응들도 보여주셨습니다."
- 대형교회 목사들의 잇따른 망언으로 기독교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아 처음엔 유가족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을 것 같아요."처음 왔을 땐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고 차가웠어요, 불교나 천주교가 많이 도와주고 있는데 개신교 목사들은 상처만 준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하지만 제가 광화문에서 가족들하고 똑같이 노숙하면서 지하철 화장실에서 씻고 단식하는 것을 보시고 마음을 열어 주셨어요. 그 어떤 말로 아픔을 위로하는 것보다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하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알게 되었어요. 유가족과 같은 입장이 되어서, 함께 동고동락하며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그런 담이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 목회 철학 같은 것도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물론이죠. 그전엔 그냥 관념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했다면 여기 와서 모든 것이 달라졌어요. 기독교 역사에 보면 사막같은 광야로 교부들이 갔어요. 거기서 하나님 말씀과 삶의 본질적인 부분을 가지고 씨름했는데 이곳에서 저도 그런 씨름을 했습니다.
사회 현상에 대해 성직자가 목소리를 낼 때는 고통 당하고 아픔 속에 있는 이웃의 삶 속에 깊이 들어갈 때 가능합니다. 그때 비로소 이들의 억울함을 알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하나님의 정의는 지극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이들과 똑같은 자리에 내려가서 그들의 아픔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들을 위해서 우리가 이야기하겠어요?"
- 성경에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이 있지만 한국 교회는 함께 울긴커녕 오히려 상처난 데에 더 소금을 뿌리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그런 측면이 많죠. 왜냐면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기의 욕망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적인 것을 잃어 버렸어요.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 중에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가 빛과 소금인데 왜 빛을 내지 않고 소금의 맛을 내지 않느냐고 책망하세요. 즉, 역할을 제대로 하라고 말씀하세요.
힘들고 어려운 삶 속에서도 옳고 바른 길을 걸어갈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어두운 세상 속에서 어두운 곳을 비출 수 있고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거든요.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영적인 생명력을 잃어 버리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가치' 얘기하는 유가족, 정치권이 정략적으로 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