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되기 전 영사정영사정이 이 지경이 될 정도로 경기도와 고양시는 무심한 세월을 보냈다.
이윤옥
아뿔싸! 집이 헐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문중 어른인 김씨는 그 어떤 사람이 와도 '문화재 말을 꺼내도 안 속는다'는 듯 공사 감행을 단호히 말했다. 또한 이렇게 허물어져 가는 집을 놔두는 것은 조상들께 도리가 아니라고 하면서 조상들 뵐 면목이 없다고 했다. 듣고 보니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 문화재적 가치가 많이 남아 있는 집을 왜 국가는 외면하고 방치하는 것일까? 문중 어르신이 백방으로 뛰어다닐 10여 년 전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상태가 좋았을 텐데... 우리는 문중 어른 김 씨에게 공사를 시작하지 말아 줄 것을 신신당부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문화재 지정'을 해서 건물을 헐지 않고 보존하는 쪽으로 노력해보자고 다짐하고 돌아온 날, 남편은 잠도 자지 않고 밤새 고민하더니 '문화재청장 앞'으로 장문의 편지를 썼다. 그리고 얼마 뒤의 일이었다. 풀이 죽어 퇴근한 남편은 "300년 된 집이 헐릴지 모른다"고 했다. 문화재청장 앞으로 보낸 편지가 경기도 문화재청 내 관련 부서로 이첩됐고 그곳에 근무하는 담당자라는 사람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고 한다.
남편은 그가 "이보세요, 최 선생! 하시는 업무나 하지 골치 아프게 왜 이런 것을 문화재청장한테 편지를 보냈소"라고 했다며 절망감을 토로했다. "관료사회란 원래 그런 것이니 힘내시라"고 남편에게 위로의 말을 했지만 낙심하는 빛이 역력했다. '300년 된 집'이 아니라 천 년 된 집이라도 절차를 밟아야 한다. 따라서 이 단계에선 문화재 전문위원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관심이 없으면 허사로 돌아가기 십상이다. 우리는 백방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선 <고양신문>에 이 사실을 '300년 된 집 보물인가? 폐물인가?'라는 기고문으로 2월 11일에 기사를 올렸다.
또한 전 고양시 문화원장인 이은만 회장님의 측면 지원도 얻어냈다. 이 회장님은 이 집이 지금보다 덜 훼손됐던 시절부터 '경기도 지정문화재' 지정을 위해 애썼지만 결국 관리들의 주장에 손을 든 상태였다. 또한 한겨레신문과 문화연대 황평우 씨도 현장으로 달려왔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여론화되고 말 한마디라도 거들어주는 사람들이 나타나 다소 힘을 받는가 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낙담스런 일이 벌어졌다.
결정적 힘을 실어 주어야 할 경기도 문화재위원 가운데 한 명이 현장을 방문한 결과 '너무 낡고 훼손이 심해서 문화재보존가치가 없다'는 보고서를 올렸다는 소식이었다. 이렇게 되면 그간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김씨 문중에서도 목수들이 대기 상태라 공사 진행을 할 판이었다. 나는 문화유산에 대한 1%의 애정도 갖지 않고 있는 문화재위원을 찾아가 따지고 싶었다. 이름이 누구인지 공개하라고 경기도 도지사 사무실로 뛰어 들어 1인 시위라도 벌일 태세였다.
이런 무지한 문화재 전문위원의 판단 때문에 남편과 나는 낙담 속에서 또 얼마 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문중 어르신은 잘 참아 주셨다. 공사지연으로 많은 고통을 받았을 텐데 "조상님의 혼이 밴 집을 어떻게든 헐지만 않고 보존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을 끝까지 지켜준 김 씨 문중 분들은 역시 조선의 뼈대 있는 선비 후예답게 훌륭한 어르신들이었다.
문화재의 문외한인 내가 봐도 300년 된 집의 문화재적 가치는 충분했다. 비록 지붕과 벽 따위가 많이 훼손됐지만 후손들의 노력으로 이나마 보존해온 것을 '문화재적 가치가 없다'고 일축한 것은 '문화유산'의 가치를 모르는 소행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 문화재전문위원이란 사람이 이런 몰상식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인가! 분노할 일이었다.
선진국에서는 기둥이나 주춧돌만 남아도 문화재적 가치를 높이 사는 판인데 문화 국가를 자처하는 대한민국의 문화재 기준이란 대체 무엇이기에 이 집을 '문화재적 가치가 없다'고 보고서를 만든단 말인가. 남편은 또 다른 문화재위원이라는 사람을 수소문해 전화로 협조를 구한 결론은 '문제를 만들기 싫다'였다고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집주인은 지난 10여년 간 '조상의 집'을 보존하기 위해 문화재 지정 탄원을 수차례 냈지만 그때마다 고양시 관계자와 경기도 문화재위원들, 문화재 관련 학자들의 냉대와 퇴짜에 실망하고 지쳤다. '고양시 유일의 300년 된 고택' 운명은 이제 바람 앞에 놓인 등불이었다.
하늘이 도운 것인가. 최종 단계의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집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들이 있었던 것인지 몇 차례의 경기도문화재위원회의 끝에 최종 단계에서 이 건물의 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날 남편과 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