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8월 15일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8.15평화통일대회 당시 모습.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통일을 염원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성호
북은 미국을 믿을 수 없는 모양이다. 북이 핵을 포기한다고 해도 미국은 유엔에 제기해 놓은 북의 인권문제라든가 생화학무기, 전자기파탄(EMP) 같은 문제를 걸고 들며 평화협정을 거부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지난 60년 동안 미국은 왜 평화협정을 무시·기피했으며 지금도 거부하고 있는 걸까.
한마디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 입장에서 평화협정을 안 해도 손해가 없다. 북은 줄기차게 미군 철수를 주장해왔다. 반면, 철수할 생각도 안 하는데 혹시라도 철수할까 두려워 매달려온 남한의 '애원'은 미국의 정책과도 잘 맞았다.
미국 위정자들의 눈에 남한은 국가의 기본주권인 군사지휘권을 포기한 나라이지만 미국에 순종하는 충직한 동맹이며 또 국익을 안겨 주는 부유한 나라이기도 하다. 이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미국은 남한이 적으로 여기는 북을 정치·경제적으로 고립·봉쇄하는 게 동북아시아 패권 유지에 도움이 됐다. 미국은 앞으로도 이런 정책 방향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분단 조국의 이런 현실을 미국에서 바라보며 나는 1990년대 후반부터 Korea-2000(재미동포통일연구회) 위원들과 미국의 동북아 논단 'Nautilus' 'APMN' 'LA Times' 'WP' 'NY Times' 등에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글을 기고하고 또 UCLA, USC대학, 태평양국제정책협의회(PCIP) 등의 회의에 참석해 갈루치, 이채진, 퀴노네스, 흐리만, 카트만, 윈더, 스칼라피노 등과 발표와 토론도 했다.
그리고 미국 국무부를 방문해 셔만 대사와 면담하고 클린턴, 오바마 대통령, 올브라이트, 힐러리 국무장관에게는 <미국의 코리아 정책> 건의서도 보냈다. 또 페리, 그레그, 해리슨, 씨갈, 플레이트, 커밍스, 앤더슨, 보스워스, 레이니, 울프, 폴랙, 크라우스, 트레버튼 등 관료와 전문가들과 학술회의에도 참여했다. 물론 재미동포사회의 통일단체들, 남한의 민주평통미국위원회에서도 활동했다.
미국이 남과 북 모두를 좋아하는 까닭
1998년 1월, 나는 Korea-2000가 마련한 <남과 북의 지도자에게 드리는 통일정책건의서>를 서울에 가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평양에 가서 김정일 총비서에게 전했다(<통일의 날이 참다운 광복의 날이다>, 오인동, 솔문, 2010).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에는 통일의 길로 가고 있는 조국을 태평양 너머에서 흐뭇하게 지켜봤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으로 6·15, 10·4 선언이 무력화되자 6·15 해외측위원들과 함께 미국 상·하원 외교위원회에 찾아가 '코리아 평화문제'를 논의하고 또 6·15 남측위원들과 함께 국무부를 방문해 성 김 6자회담 대사, 로버트 킹 북 인권대사와 토론하고 그 자리에서 건의서도 건넸다.
나는 클린턴과 오바마 대통령에 보낸 <미국의 코리아 정책건의서>에 대한 답신도 받아봤다. 2010년 정전기념일에는 6·15 미국위원회(이행우 위원장)가 나서서 현 미 국무장관 케리(당시 상원외교위원장)의 주선으로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코리아 피스 포럼'(Korea Peace Forum, 평화토론회) 사회를 맡기도 했다. 당시 포럼에는 민주당 자누치 코리아정책 담당관(현 맨스필드재단 소장)과 공화당 할핀 코리아 전문위원을 대담자로 토론을 진행했다. 나는 당시 포럼을 통해 미국의 국익 앞에 공화당과 민주당의 차이는 별로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미국 정부는 반목·대결하고 있는 남과 북을 무척 사랑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북은 말을 듣지 않아 좋고, 남한은 말을 너무 잘 들어 좋다. 여기서 지나치지 말아야 할 것은 미국이 위협하는 한 북이 핵미사일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미국은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으로서는 북핵이 있어야 폐기나 비핵화를 주장할 수 있다. 남한은 이를 적극 복창해 주니, 미군 주둔을 계속할 수 있고, 군사기지도, 대규모 미군 실전 연습장도 무상제공받으며, 고가의 재래식 무기도 파는 것은 물론이고 미군 주둔 비용과 미군 가족들의 주택까지도 제공받을 수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받을 수 없는 이런 극진한 대우를 미국이 어찌 마다하겠는가. 더 중요한 것은 떠오르는 중국과 옛 패권을 회복하려는 러시아를 한반도 근거리에서 견제하기 쉽고, 부유한 일본에서 국익을 챙기며 동아시아 정책을 지속해가면 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패권국가가 택할 수 있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정책이다.
이야말로 국제관계 역학의 논리도 필요 없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러나 문제는 이런 정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손해만 보고 있는 어리석은 조국의 남과 북이다. 정말 안타깝다.
남북문제는 남북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