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18일 정오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미사에 참석했다.
청와대
지난 5월 18일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명동성당에서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미사'를 봉헌했다. 강론에 나선 염 추기경은 "오늘 미사를 통해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한편 특별히 유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에는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염 추기경은 유족들의 아픔에 집중했다. 그는 "세상을 살아가며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보다 더 큰 슬픔이 어디 있겠나"라며 "졸지에 가족을 잃고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중에 있는 유가족들을 만났지만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하고 그냥 그들의 말을 들었다"고 참담한 심경을 밝혔다. 이어서 "살릴 수도 있었는데...하며 울부짖던 한 어머니의 억울함을 깊이 공감했다"면서 "분향소를 떠나며 무죄한 이들의 죽음에 대해 살아있는 우리 모두가 책임이 있음을 통감했다. 결코 이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5월 18일 미사 이후 약 석 달의 시간이 흘렀다. 그 석 달의 시간 동안 지방선거가 있었고, 여당이 선방했다. 이후 7·30재보선이 있었다. 예상을 뒤엎고 여당이 압승했다. 정치 지형도가 급변했다. 추락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도 회복했다. 그리고 교황이 4박 5일 기간 동안 방한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지난 석 달은 정체된 시간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거리에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야만의 시간'들이었다. 김영오씨는 8월 27일자로 45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진상규명을 요구한 이들의 처지는 오히려 곤궁해졌고, 바로 이 때 "결코 세월호를 잊어서는 안 된다"며 "정부는 철저한 원인 규명과 함께 책임자를 가려내야 할 것"이라고 했던 염 추기경은 "아픔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다른 말을 했다.
결정적 위기 순간에 '박근혜 구원등판'했던 염 추기경 정치적 해석을 불러온 염수정 추기경의 발언은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해 11월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국가정보원 대선개입을 비판하며 '대통령 사퇴촉구 미사'를 집전했다. 점차 비판이 확대될 기미를 보일 때 즈음 염 추기경은 한 미사시간에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는 사제가 직접 정치적이고 사회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정치구조나 사회생활 조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교회 사목자가 할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또 염 추기경은 "이 임무를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평신도의 소명으로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염수정 대주교의 발언은 <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에서 1면 기사로 반영하는 등 보수 진영의 큰 호응을 얻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과 비교해 보면 세월호나 사제의 정치 참여 해석이 사뭇 다르다. 앞서 교황은 방한 당시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며 노란 리본을 계속 착용한 이유를 설명했고, 사제의 정치 참여에 대해서는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겐 의무"라고 강조했다. 염 추기경의 논리에 따르면 사제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란 말인가.
'이제 그만하자'는 염 추기경...'교황과 같은 마음'이라는 강우일 주교 강우일 주교는 이번 교황 방한준비위원회의 위원장이었다. 제주교구를 맡고 있는 그는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이기도 하다. 강 주교는 지난 7월 25일 광화문을 방문해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났다.
그는 이 방문의 의미에 대해 <시사인>과의 8월 6일 인터뷰에서 "(극한 단식투쟁으로) 가족들 건강 다치면 그 다음에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으니 '몸 추스르면서 하십시오'라고 말씀드렸다"면서 7·30 재보선 끝나고 정부와 여당 측은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만 하고 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 주교는 광화문 시복미사 때 교황과 김영오씨와의 만남을 가능하게 한 인물이기도 하다.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에서 진행된 시복미사와 관련해 "(유가족들을 이동시키는 문제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말한 강 주교는 이어서 "최악의 경우에는 우리가 그들을 끌어안고 미사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유가족 철수는 처음부터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세월호 희생자 승현군과 웅기군의 아버지들이 나무 십자가를 들고 진도 팽목항을 거쳐 대전으로 도보 순례하던 당시 상황을 두고 강 주교는 "(나무 십자가를 교황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시간이 여의치 못해 같이하지 못했지만 마음은 함께 걸었다. 교종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영오씨의 단식투쟁이 45일째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싸고 여야를 비롯한 한국 사회는 극심한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회는 멈춘 지 오래됐고 야당은 투쟁을 공식 선언했다. 대통령의 역할 또한 보이지 않은 지 오래다. 서울 한복판에서 유가족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단식을 이어가고 있고, 청와대 앞에서는 유가족들이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