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의 '수련 연못'
이상기
월터의 작품을 보고 2층으로 올라간 나와 아내는 모네를 먼저 볼지 터렐을 먼저 볼지를 논의한다. 아무래도 지명도가 더 높은 모네를 먼저 보기로 한다. 이곳 역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지중미술관이 이곳 나오시마에서 가장 인기가 높고, 또 전시공간이 좁아 수용인원이 적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려는 생각에 다들 잘도 기다린다. 한 15분쯤 기다렸을까? 우리 차례가 된다.
안으로 들어가면 네모난 공간의 사방에 수련 그림이 걸려 있다. 정면에 가장 큰 그림(2×3m) 한 점, 양 측면에 중간 크기(2×2m) 각 한 점씩, 입구 양쪽 벽에 작은 크기(1×2m) 각 한 점씩 해서 모두 5점이다. 그런데 이들 수련 그림이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그림에 상대적으로 추상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좀 더 인상적인 수련 그림들을 이미 좀 더 유명한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네는 1897년부터 수련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수련 그림을 100점 이상이나 그렸다. 그 중 다섯 점이 이곳에 있는 것이다. 그 중 가장 큰 작품의 제목이 '수련 연못(Water-Lily Pond)'이다. 가운데 왼쪽으로 붉은 빛이 감돌고, 오른쪽 아래 부분에 수련이 피어 있다. 그런데 그 연꽃과 연잎의 대비가 뚜렷하지 않고, 전체 색조도 지나치게 어둡다. 인상주의적인 시대를 지나 표현주의적인 느낌까지 난다.
다른 네 점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들이 대장식화(Grande Décoration)의 개념으로 만들어져 오랑주리미술관에 전시되었다고 하지만, 생각처럼 그렇게 감동이 밀려오지는 않는다. 모네의 위대성을 이야기하자면, 사진과 광학의 시대에 오로지 자신의 눈을 통해 대상 세계를 표현했다는 점이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예술은 온통 실험과 가상의 유희로 변화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모네의 작품은 여전히 현대회화의 고전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제임스 터렐이 만든 빛의 미학 제임스 터렐의 빛의 예술을 보기 위해서도 한 20분은 기다린 것 같다. 왜냐하면 주어진 공간에 8명만 입장시키기 때문이다. 들어가면서 우리는 '에이프럼, 페일 블루(Afrum, Pale Blue: 1968)'를 볼 수 있었다. 에이프럼이 찾기(Navigation, Search)를 뜻하고, 페일 블루가 진청색을 뜻하므로, 우리말 제목으로는 '진청색 찾기' 정도가 될 것 같다.
이 작품의 특징은 각이 진 곳에 빛을 투사해 입체 또는 건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배경은 진청색이고, 그 가운데 육각형의 입체가 나타난다. 빛을 통해 관람객을 현혹시키는 기법을 사용했다. 이것을 지나면 도슨트의 안내로 계단을 올라 오픈 필드(Open Field: 2000)로 들어가게 된다. 정면으로 푸른색 평면이 나타난다. 그런데 그곳으로 들어가면 관람객이 입체 속에 있게 된다. 푸른색 빛이 공간에서 흔들리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리는 그 공간 속을 움직이며 그 분위기를 즐긴다.
사실 터렐이 만들어낸 빛의 예술인데, 관람객이 움직임으로 해서 체험의 예술, 행위 예술로 승화된다. 수동적인 감상이 능동적인 행위로 변하는 것이다. 이것이 터렐이 추구하는 현대예술이다. 감상을 끝내고 나오면서 보면 다시 평면이 보인다. 그런데 들어갈 때의 평면과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바라보는 방향과 각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내부 공간을 체험하면서 인간의 의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터렐은 빛과 건축이라는 머티리얼(Material)과 마음이라는 멘탈(Mental)을 결합시키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